금융위원회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의 5% 룰 관련 공시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며 개정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54조(대량보유 등의 보고에 대한 특례)가 이달 1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여기서 '5% 룰'이란 투자자들이 특정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게 되면, 그 날로부터 5일 이내에 해당주식 보유현황, 보유목적(경영참여 혹은 단순투자), 보유주식에 대한 주요계약 내용을 금융위와 거래소에 보고하는 규정이다. 여기에 추가로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 의무 보고해야 한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그동안 '경영참여' 목적의 투자자만 할 수 있었던 항목인 △배당 △정관 변경 △회사 임원의 선임과 해임 △자본금 변동 등을 '일반투자' 목적으로 신고한 투자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국민연금이 '일반투자' 목적으로 투자한 기업에 대해서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경영참여' 수준의 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
금융위는 △‘배당’과 관련된 주주활동 △공적연기금 등의 사전에 공개한 원칙에 따른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추진 △회사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상법상 권한(해임청구권 등) 행사를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아니다'고 규정하고, 이런 소극적(?) 경영참여 행위는 '일반투자' 신고자도 가능하도록 했다.
일반투자로 분류될 경우 경영참여 투자자와 가장 큰 차이점은 '내부자의 단기매매차익반환의무(자본시장법 제172조)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경영에 관여하더라도 최근 6개월간의 시세차익을 반환할 의무가 사라져 국민연금이 더 적극적인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5%룰 시행령 개정은 단순히 공시시점을 명확히 정한 것이지, 경영권 참여를 확대하려는 목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5%를 넘는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들의 공시 기준을 명확히 하고, 공적연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해 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경영권 간섭이 확대될 것이라고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기업 대 국민연금의 갈등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재계는 5% 지분 매입 후(혹은 추가 1% 변동 후) 5일 이내에 공시하느냐, 지분변동 다음 달 10일 이내에 공시하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일각에선 5일 만에 공시해야 하는 과거와 달리 매수·매도의 투자전략 노출을 우려하지 않고, 적극적인 지분변동이 가능해져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분 확보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봤다. 이 경우도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의 경영간섭을 한결 편하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번에 시행된 개정안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지분 매입 후 그 목적을 '경영참여'로 선언하고, 그에 따른 시세차익을 토해낸 후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규정을 바꿔 앞으로는 '일반투자' 목적으로만 신고하고, 시세차익 반납 없이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점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박사)은 "국민연금이 '일반투자'라는 이름으로 투자목적을 공시하고도 마음대로 기업경영을 좌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며 "특히 이런 큰 결정을 자본시장법이 아닌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해줬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국민연금은 경영에 더 쉽게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책임은 피할 수 있는 길이 생겨, 연금사회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보유목적(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지의 여부) 신고항목에 '일반투자'가 신설된 것이다. 그리고 경영참여 투자자만이 할 수 있는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항목 중 4가지를 '일반투자' 항목으로 넘겨, 일반투자로 신고한 국민연금이 이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원래 5% 이상 지분을 확보하면 공시해야 하는 전문투자자의 투자 목적은 '경영참여' 또는 '단순투자' 등 2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시행된 개정안에선 경영 참여 발언권(경영참여 목적)을 가지면서도 투자수익(단순투자)을 높게 받을 수 있는 '일반투자(경영참여+투자수익 확보)'를 신설했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자본시장법 제147조(주식등의 대량 보유 등의 보고)와 관련해, 시행령 제154조(대량 보유 등의 보고에 대한 특례)의 여러 내용을 손질하며, 154조 5항에 일반투자 항목을 넣었다.
제154조 4항(전문투자자)에서 국민연금을 따로 떼 내 5항(전문투자자 중 금융위가 정해서 고시하는 자-국민연금 등)을 신설하고, 여기에 '경영참여' 투자, 단순투자, 일반투자 등 보유목적을 세분화했다.
그리고 일반투자자가 할 수 있는 항목을 분리해냈다. 제154조 1항(대외적 의사 표시 제외)과 1항1(임원 선임 해임 등), 2(정관 변경), 3(지배구조개선 예외)의 시행령 내용을 바꾸고, 배당 관련한 4항(배당의 결정, 국민연금 예외)을 삭제했다. 또 제154조 3항 1, 2를 수정하고, 3(단순투자시 경영권 영향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삭제했다.(표 참조)
5% 지분을 넘어선 주주들은 그 순간부터 자신의 투자목적과 정체성을 뚜렷이 해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할지, 단순투자를 통한 수익확보를 목적으로 할 지에 따라 공시를 비롯해 단기차익 등에 대한 책임도 달리했다. 금융위는 이를 더 세분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특이한 일이 발생했다. 원래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들어있던 것 중 일부 항목(배당, 임원 해임, 정관변경, 대외의사 표현 등)이 경영권과 무관한 행위로 바뀌었고, 일반투자 목적의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행위로 버젓이 바뀐 것이다.
금융위는 '단순투자'는 의결권 등 지분율과 무관하게 보장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투자자, '일반투자'는 경영권 영향 목적은 없으나 주주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경우, '경영참여'는 경영권 영향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로 분류했다.
경영참여 투자자와 '일반·단순' 투자자의 가장 큰 차이는 단기 매매차익에 대한 반환 책임이 있느냐의 여부다. 경영참여 목적으로 신고한 경우 주식 취득 후 6개월 이내의 단기간에 발생한 시세차익은 해당 회사가 요구할 경우 반환하도록 돼 있다.
소위 '10%룰'인 자본시장법 제172조(내부자의 단기매매차익반환)에 따르면 주요주주(상법상 지분 10% 이상이거나 이사 감사 선임과 해임 등 주요 경영사항에 영향력 행사 주주, 임직원) 등은 자격을 얻은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매수, 매도에 따른 단기차익의 반환청구 대상이 된다. 해당 기업이 반환을 청구하면 반환의 의무가 있다.
쉽게 말해 과거에는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삼성전자나 포스코 등에 위 네가지(배당, 임원 해임, 정관변경, 대외의사 표현 등) 중 배당을 제외한 세가지 사항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경영참여 투자자로 목적을 공시해야 했다. 그리고 6개월 이내에 사고 판 주식에서 얻은 이익을 반환해야 했다.
지난해 2월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의 경영권 문제에 관여하려고 했다가, 대한항공 지분 11.7%를 보유해 10%룰에 걸려 경영참여를 포기한 게 대표적 예다. 당시 경영참여를 선언할 경우 3년간 최대 489억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승희 의원 자료)에 달하는 차익 반환 처리 이슈가 발생해 '경영참여' 선언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국민연금은 배당, 이사 선임이나 해임 요구의 상법상 청구권 등을 행사하면서 '일반투자'로 신고해 차익을 반환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현재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시장 투자비중은 지난해말 약 7%이며, 지난 4분기 기준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98개, 5% 이상 기업은 313개로 조사됐다.
그만큼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은 많아졌고, 투자 수익을 반환해야 하는 리스크가 사라짐에 따라 국민연금은 배당요구나 이사 선임과 해임, 정관변경, 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들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할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논란거리는 금융위가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제쳐 둔 4가지 항목이 실제 그렇느냐는 문제다.
단순의견 전달과 대외적 의사표시와 배당의 결정, 임원의 선임 해임 또는 직무 정지(상법상 해임청구권 조항)와 이사회 등 회사의 기관과 관련된 정관의 변경(지배구조개선 등), 자본금 변경 등이 실제 경영권과 무관할까.
국민연금이 주주총회 전에 대외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의사를 표시하면 이는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공격신호로 받아들여지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울프팩(늑대의 집단 사냥) 효과로 뜻을 같이 하지 않는 기관투자자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이사나 감사의 선임 또는 해임과 관련된 것도 마찬가지다. 상법 제 542조8항 6에는 이사, 집행임원, 감사의 선임과 해임 등 상장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를 주요주주로 규정하고 있고, 이들 주주가 하는 행위가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고 정해져 있다.
또 자본시장법 147조1항에도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임원의 선임 해임 또는 직무 정지, 이사회 등 회사의 기관과 관련된 정관의 변경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 명시돼 있다. 법에 이미 정해져 있는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하위법령인 시행령이 뒤집어, 재계는 위임입법의 범위를 침해했다고 보고 있다.
시행령 제154조1항1의 개정도 마찬가지다. 상법 제385조(해임) 2항에서 3% 이상(소수주주)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는 부정한 행위를 한 임원에 대해 주주총회에서 해임이 부결되더라도 법원에 해임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미 상법에 있는 내용이다.
재계는 5% 이상의 주주가 법원에 해임 청구를 하려고 할 경우 '경영참여' 목적을 적시하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시행된 개정안으로 국민연금은 5% 이상을 가진 일반투자자(주요주주)로 해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의 투자수익을 높인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방법과 실패에 대한 책임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길은 열렸는데,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장치는 없다. 권리에 따른 책임이 뒤따르는 게 경영참여형 펀드인데 국민연금은 일반투자로 공시하고 이를 지지 않게 된 셈이다.
국민연금의 궁극적 목표는 투자 수익을 통해 국민의 노후를 안정시키는데 있다. 투자에 대한 판단은 철저히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기업가치 제고에 목표를 둬야 한다. 문제는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OECD 회원국 36개국 중 공적 연금이 국내 기업 주식 의결권을 보유한 나라는 17개국이며, 이 가운데 기금운용 최고의사결정기구에 행정부의 현직 장관이 있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보유주식 의결권을 기금운영위원회가 직접 행사하는 경우도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의 기초연금인 연방사회보장연금제도(OASDI, 장애연금)은 주식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돼 있고, 채권에만 투자하고 있다. 또 일본 기초연금의 경우도 민간위탁기관이 투자와 의결권을 행사하는 구조다. 정부가 운영하는 네덜란드나 캐나다의 연금도 철저히 민간에 위탁해 정권의 입김을 차단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과거에도 볼 수 있듯이 선한 의도를 갖더라도 행정부의 장관이 투자 결정의 최고위직에 있으면서 연금의 독립성을 말하기란 쉽지 않다.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경영에 관여하고, 정치적 이익을 실현하는 형태의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가 높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