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첫째도, 둘째도 인재 확보입니다. 반도체 현장에서 체감하는 인력 확보 상황은 필요인력의 5분의 1에 불과합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정부가 30일 대학 내 반도체 계약학과를 확대하고 5년간 3000여명의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내용의 반도체 인재 육성 방안을 발표한 것을 두고 업계와 학계에서 뒤늦었지만 환영한다면서도 좀더 파격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기술 리더십을 확보한 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국내 업계가 다소 뒤처지는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와 팹리스(설계)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3년 안에 정부 계획의 2배 이상인 최소 7000명의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 기업에서 매년 뽑는 반도체 인력 1만여명 가운데 반도체 전공자는 1400명 수준인 것으로 집계된다. 그나마 대다수 전공자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에 몰리기 때문에 중소 반도체업체에서는 인력 부족이 상수(常數)가 된 지 오래다.
반도체 설계업체 A사의 경우 지난해 말 채용한 신입사원 60여명을 6개월이 지난 최근까지도 현장에 투입하지 못했다. 반도체 관련 전공자가 없어 모두 재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1년 정도 사내 교육을 한 뒤에야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실정"이라며 "인력풀 자체가 부족해 대기업도 사람 뽑기가 어려운 마당에 중소업체는 대학에 가서 읍소해도 데려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수년 동안 되풀이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스카우트 경쟁 과열도 결국 인력 부족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인사는 "삼성전자는 수원갈빗집, SK하이닉스는 이천 쌀집이라고 부르면서 해마다 연봉을 좀더 주겠다는 쪽으로 인력이 빠져나가고 기업은 이들을 붙잡기 위해 연봉 인상 시기가 되면 서로 0.1%포인트라도 더 얹으려고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인력 부족 문제는 국내 기업들만의 고민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 대만 등 반도체 산업을 키우는 나라에서는 모두 인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됐다. '반도체 수요 폭발→공장 증설→인력 부족'의 고리에 점점 속도가 붙으면서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하는 대만 반도체업계에서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3만4000명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만 정부는 15년 전부터 매해 전문인력 1만명을 육성하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해 5월 반도체 관련 대학 학과의 정원을 10% 더 늘리는 내용의 '반도체 교육 장려 법안'을 제정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중국은 반도체 자급자족을 선언하면서 베이징대, 칭화대에 반도체학과를 개설해 1년에 반도체 전공자를 20만명씩 키워낸다"며 "미국의 강력한 견제로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여전히 더딘 걸음을 하고 있지만 엄청난 숫자의 인력 양성을 감안하면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반도체 학과 확대 방안을 두고 학생이 문제가 아니라 교수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전공 교수가 부족해 인력 양성의 뿌리가 말랐다는 얘기다. 황철성 교수는 "6~7년 전부터 인력난에 대비해야 한다고 학계와 업계가 목소리를 냈지만 정부가 신경쓰지 않는 새 반도체 고급 인력풀 자체가 바닥난 상황"이라며 "반도체 학과를 만들더라도 가르칠 교수가 없는데 어떻게 수업과 연구의 질을 확보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