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11시쯤 충북 단양 한일시멘트 공장 한복판으로 들어서자 높이 약 30m 옥색 크레인과 함께 노란색 안전 난간과 계단이 복잡하게 얽힌 정체 모를 구조물이 나타났다. 구조물 중간 높이에 밝은 회색 원통형 설비가 있고 그 위에 조금 더 큰 회색 설비가 있었다. 어디선가 '웨엥' 하는 굉음이 끊임없이 들렸다. 한일시멘트 관계자가 목소리를 키우고 "중간 높이에 설비는 파이로터, 그 위 설비는 파이로클론이다"며 "모두 지난해 10월부터 다섯달 넘게 '환경개조'를 해 새로 설치한 설비들"이라고 했다.
파이로터, 파이로클론은 시멘트 생산 설비 '예열기'의 한 부분이다. 예열기는 미분말로 만든 석회석과 철질 등을 섞은 시멘트 원료를 킬른(Kiln)에 넣기 전에 1차로 가열하는 설비다. 시멘트가 물과 섞여 굳으려면 원료 속에 탄산 성분이 없어야 한다. 예열기는 원료를 850도로 구워 탄산 성분을 날려 보내는 설비다. 킬른에서는 원료를 1500도로 구워 시멘트 반제품인 클링커를 제조한다.
예열기는 연료로 석유의 일종인 벙커C유를 쓰다가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겪고 유연탄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불에 타는 폐기물을 압축·분쇄한 '순환 자원'을 유연탄과 섞어쓴다. 순환 자원은 유연탄보다 발열이 안 좋다. 순환 자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투입하면 불완전 연소로 미세먼지 유발 물질인 질소산화물(NOx)과 일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파이로터와 파이로클론은 순환 자원이 완전 연소할 수 있도록 연소 시간을 늘리고 산소를 더 공급해주는 설비다. 결과적으로 순환 자원 투입량을 늘릴 수 있다. 기존에 유연탄과 순환 자원 사용 비중이 7대 3이었다면 개조 후에는 5대 5가 된다. 순환자원은 유연탄보다 연소할 때 탄소 배출이 적은 탈탄산 효과가 있다. 개조 후 예열기와 킬른의 탄소 배출량은 10%,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5% 저감된다. 한일시멘트는 소유한 킬른 6기 중 3기를 우선 개조한다. 투자 금액은 2021년 계획 당시 약 2700억원에서 현재 4700억원까지 늘어났다.
탄소 배출량 저감은 시멘트 업계에 생존 문제다.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목표를 못 맞추면 탄소 배출권을 사서 써야 한다. 국내 시멘트 7사는 예열기 개조 등을 해보고 감축량이 부족하면 다른 개조를 모색하는 식으로 2030 저감 목표를 맞춰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멘트 업계는 현재 환경 개조를 당초 계획보다 미루고 있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등으로 미뤄졌던 건설수요가 늘면서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시멘트 7개의 1분기 시멘트 수요량은 1066만톤으로 전년도 987만톤보다 79만톤(8%) 늘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상위 100위권 중·대형 건설사는 지난달 현장의 63.6%가 레미콘 공급 부족으로 공사를 중단하거나 지연했다. 시멘트 업계의 킬른 동절기 정기 보수와 환경 개조가 시멘트 생산 감소의 원인이라는 분석이지만 일각에서는 시멘트 업계가 단가를 높이려 생산량을 조절했다고 의심 중이다. 시멘트업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동절기 보수, 환경 개조로 가동이 중단된 킬른은 전체 35기 중 11기다. 지난해 1분기와 같은 수준이다. 생산량 조절설에 관해서 시멘트 업계는 "환경 개조도 미루고 배상 리스크를 떠안으며 올 1~2분기 수출 물량 25만톤을 국내에 공급하고 있다"며 "고정비가 많이 들어 생산량을 조절하면 오히려 손해"라고 설명했다.
이날 한일시멘트 공장도 시멘트 창고인 사일로 앞과 공장을 가로지르는 국도 매포길에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가 수십대 주차돼 있었다. 트레일러에 시멘트는 5~10분이면 싣지만 워낙 수요가 많아 사일로에 재고가 없어 시멘트를 생산할 때까지 차량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킬른 정기 대보수와 환경 개조는 대부분 이달 중 마무리된다. 한일시멘트의 예열기 환경 개조도 10일 마무리된다. 시멘트 업계는 이달 생산량이 더 늘면 레미콘 수급 불안이 차츰 해소될 것으로 본다. 시멘트 협회 관계자는 "개조가 끝나 생산량과 재고가 늘면 수급 문제가 점차 해결될 것"이라며 "관계 부처와 소통, 수급 상황 상시 점검, 추가 대책 마련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