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에 이은 탄핵소추 무산으로 국정 혼란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방산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공급 계약이 불투명해진 데다가 새 수출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해외 정상의 방한 일정도 무산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세계 방산 시장에서 중요한 대외 신뢰도가 곤두박질치면서 업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9일 방산 업계에 따르면 당초 타결이 임박한 것으로 관측되던 폴란드 정부의 K2 전차 추가 구입 계약의 연내 체결이 불투명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폴란드를 방문했던 지난 10월 말까지만 해도 폴란드 정부는 70억 달러 규모의 K2전차 2차 이행 계약을 연내 성공적으로 타결하기 위한 동력을 이어간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폴란드 측에서 최근 협상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방산 수출의 경우 기술 보안과 외교관계 등 예민한 사안이 복합적으로 다뤄져 이를 조율하고 정리하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 산업보다 크기 때문이다. 무기 수입국 입장에서는 수출국의 정치적 안정성과 대외신뢰도 등을 의사결정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해외 정상의 방한 일정이 축소·무산되고 있는 것도 방산 업계에게는 뼈아픈 상황이다. 앞서 방한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즈공화국(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KAI(한국항공우주산업)의 한국형 기동헬기 생산 현장을 시찰하려 했으나 이를 취소하고 조기 귀국했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5~7일로 예정됐던 방한 일정을 연기했다. 이번 방문에서 양국의 주요 방산 기업들의 교류도 예정됐으나 불발됐다.
특수선 업계는 국내외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상세설계·선도함(1번함) 사업자 선정이 연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방위사업청은 당초 올해 안에 사업자를 선정하려 했으나 내년 상반기로 한 차례 미뤄진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계엄 여파로 국방부 장관이 사퇴하는 등 군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KDDX 사업자 선정이 더욱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내비친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결정 주체는 방위사업청이기는 하지만 국방부 수장이 공석인 상황이라 일정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조선 업계가 해외 수출을 위해 추진해왔던 '팀 코리아'도 당분간 동력을 잃게 됐다. KDDX 사업자 선정을 놓고 고소·고발 공방을 벌이던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최근 이를 취하하며 화해의 제스쳐를 취했다. 호주 정부가 발주한 10조원 규모의 수상함 수주전에서 기업과 정부가 원팀을 구성해 총력전을 펼친 독일과 일본에 밀려 고배를 마신 이후 해외 수출전에서의 '원팀'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그간 경쟁해왔던 두 회사 사이에서 관계를 조율해줄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데 현재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방산 업계는 국정 혼란이 수습되더라도 피해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다. 국가 브랜드가 타격을 입으면서 수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정 상황은 외국에서 보기에는 우리나라가 불안정한 국가로 비춰질 수밖에 없어 신뢰도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