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한일 경제연대' 구상에 "양국 국민들도 봤을 때 (경제를) 통합하는 게 '내 삶에도 더 좋겠다' 생각하는 상황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지속적으로 다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해 실제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가야 한다는 취지다.
최 회장은 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일본상공회의소와 함께 '제14회 한일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한일 경제연대' 방안을 논의했다. 최 회장은 회의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일 경제연대의 구체적인 시점과 내용 등을 못 박을 수는 없지만 지향점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 회장은 "EU(유럽연합) 역사를 보면 완전히 (구체적 목표 등을) 정해놓고 가지는 않는다"며 "지금처럼 무엇인가 조금 더 조금 더 갔을 때 '이 정도면 아예 통합하는 게 더 낫겠다' 이 상태까지 계속 전진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측의 반응에는 "상당히 적극적"이라며 "제가 말하는 어떤 사람도 시기상조라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 회장은 이날 개회사에서는 "두 나라가 단순한 협력을 넘어 이제는 연대와 공조를 통해 미래를 함께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예를 들어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에너지를 구매하거나 저출생·고령화 대응을 위해 의료 시스템을 공유함으로써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또한 EU(유럽연합)의 '솅겐 조약'처럼 여권 없는 왕래를 통해 관광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가는 관광 프로그램이 없다"며 "관광상품을 해외에 만들어서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방문하는 외국인이 많아지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최 회장은 취재진에게 "대한상의 같은 데서 공동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장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바야시 켄 일본상의 회장(미쓰비시상사 상담역)도 개회사에서 "한일관계는 지금까지 경쟁구도에서 협력구도로 나아가는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며 "미래를 내다보며 함께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회장단은 이날 회의를 통해 공동성명을 내고 △AI(인공지능)·반도체·에너지 협력 △저출산·고령화 공동 대응 △문화교류 확대 등에 뜻을 모았다.
우선 AI·반도체·에너지 등이 양국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분야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를 바탕으로 양국은 안정적 투자환경과 공급망을 공동으로 구축키로 했다.
또 저출산·인구감소가 공동으로 직면한 중대한 과제라는 점에서 해결책 모색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양국 정부가 관련 협의에 착수한 만큼 민간 부문도 정책·연구 경험 공유 등 실질적 협력 방안을 논의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한일 경제계는 직항노선 확대로 상호 방문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양국 상의는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경제·관광·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 기반을 넓혀 나가기로 했다.
이날 특별대담에서는 양국 협력의 틀을 경제연대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비전이 논의됐다. 대담은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미래산업 전환, 산업·통상구조 재편 등의 이슈를 짚어나갔고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 유혁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대표, 야마사키 시로 내각관방 참여, 이주인 아쓰시 일본경제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이 패널로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산업·통상구조 재편 속에서 한일 양국이 기존 방식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룰 테이커(Rule Taker)에서 룰 세터(Rule Setter)로의 전환'을 제안하며 '한일경제연대'를 통해 양국이 공동시장으로서 외연을 확대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AI·반도체 분야에서는 피지컬 AI(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는 AI시스템) 협력과 공동 멀티모달 AI(인간처럼 오디오, 비디오, 텍스트 등을 동시에 처리하는 AI) 플랫폼 구축 등 양국의 상호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협력 필요성이 제안됐다.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단일 국가의 한계를 넘어 한일 공동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날 회의에서는 한일 지역협력에 기여한 양국 우수 상의도 선정됐다. 한국 측에서는 고베·이미즈 등 일본 지역상의와 오랜 기간 교류를 이어온 인천상의가, 일본 측에서는 제주상의와 청년·농산물 등 교류 분야를 확대한 아오모리상의가 각각 꼽혔다.
국교정상화 이후 경제협력 60년사를 조명하는 특별전시도 함께 진행됐다. 기술교류와 글로벌 합작투자에서 나아가 미래산업 공동대응으로 확장된 다양한 협력 사례가 소개됐다.
한편 이날 회의에는 우리 측에서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양재생 부산상의 회장, 박윤경 대구상의 회장, 박주봉 인천상의 회장, 한상원 광주상의 회장, 정태희 대전상의 회장, 이윤철 울산상의 회장, 양문석 제주상의 회장, 박승희 삼성전자㈜ 사장, 이형희 SK㈜ 부회장 등 기업인 16명이 참석했다.
일본 측에서는 고바야시 회장, 우에노 다카시 요코하마상의 회장(우에노트랜스테크 회장), 가와사키 히로야 고베상의 회장(고베제강 수석고문), 후지사키 사부로스케 센다이상의 회장(후지사키 회장), 구라하시 준조 아오모리상의 회장(구라하시건설 회장), 기타자와 도시후미 도쿄해상일동화재보험 상담역 등 6명이 참석했다. 제15회 한일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는 내년 일본 센다이에서 개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