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업계가 미국 전기차 보조금 축소 여파로 실적 부진에 직면한 가운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국내 배터리셀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핵심 관계자들과 긴급 현황 점검에 나섰다.
11일 정부와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김 장관은 지난 8일 오전 서울 모처에서 김우섭 LG에너지솔루션 커뮤니케이션 센터장과 신창호 SK온 운영총괄, 조한제 삼성SDI 마케팅팀장(부사장)과 비공개 조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송호준 에코프로 대표와 허제홍 엘앤에프 대표 등 주요 배터리 소재 기업 경영진도 참석했다.
정부는 당초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용욱 SK온 사장·최주선 삼성SDI 사장 등 3사 최고경영자(CEO)들과의 회동을 추진했지만 일정 조율 과정에서 참석자가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배터리업체 관계자는 "임박해서 요청이 들어오다보니 대참이 결정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간담회는 최근 국내 배터리업체들이 맺은 조(兆) 단위 공급 계약에 잇따라 차질이 빚어지자 대책 논의 차원에서 마련됐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팩 제조사 FBPS와 체결했던 3조900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모듈 공급 계약, 포드와의 9조6000억원 규모 계약이 지난달 연이어 취소됐다. 포스코퓨처엠과 엘앤에프가 각각 GM과 테슬라에 납품하기로 했던 대형 계약도 축소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9월 전기차 구매 시 제공하던 세제 혜택을 종료하면서 판매 실적이 급감했다. 미국의 월간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8~9월 14만대 수준에서 10월 6만9000대, 11월 6만5000대로 떨어졌다. 완성차 업체들도 전기차 생산 계획 조정에 들어갔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들은 미국 내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해 현지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법인(JV) 구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에서 포드와의 합작법인(블루오벌SK) 체제를 청산한 SK온 사례가 모델로 거론된다. 두 회사는 지난해말 SK온이 블루오벌SK의 테네시 공장을, 포드가 켄터키 1·2공장을 각각 독립적으로 소유·운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현재 삼성SDI는 현재 스텔란티스와의 합작공장 1곳을 가동하고 있고, 스텔란티스·GM과는 각각 합작공장 1곳씩 건설 중이다. 두 공장은 모두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합작공장 2곳, 스텔란티스와 합작공장 1곳을 운영하고 있다.
일단 배터리업계는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제정 등 정부 차원의 지원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IRA는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도입됐으며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해주는게 핵심이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를 벤치마킹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첨단 기술 경쟁 대응을 위해 국내 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생산촉진세제'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뿐 아니라 2차전지 등 전략 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 확대가 골자다.
아울러 민·관은 올해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 업황 개선의 돌파구를 찾는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미국에서 설치된 ESS가 5.3GW(기가와트)로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했다. 우드맥킨지는 향후 5년간 미국 ESS 수요 전망치를 기존보다 15% 상향 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전기차 시장 변동성이 커진 만큼 사업 구조를 재정비하는 동시에 ESS 등 신규 수요처를 적극 발굴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