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에 묶인 기업가정신…제도 개선 목소리 커진다

김남이 기자
2026.02.10 14:00

한경협, '배임죄 문제점과 개선방안' 세미나…모호한 규정→ 형사처벌 남용 가능성 높여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와 컨테이너가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사진=정병혁

재계가 줄곧 호소해온 배임죄 개선에 대해 공감하는 학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모호한 구성요건으로 경영진의 정상적인 의사결정까지 위축되고 기업가정신까지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영판단원칙을 명문화하는 등 배임죄 제도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0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배임죄 문제점과 개선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배임죄로 인해 기업인들이 모험적 결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혁신의 원천인 기업가정신을 높이기 위해 배임죄 제도의 합리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표를 맡은 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배임죄의 가장 큰 문제로 '모호성'을 지적했다. 배임죄 구성요건이 불명확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예측가능성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이 곧바로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는 경영자가 사전에 자기 행동이 범죄가 되는지 알기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또 현실적인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손해 발생의 위험'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구조도 지적했다. 실패할 수 있는 경영판단까지도 범죄로 몰아갈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계약 위반 등 민사 영역의 문제를 형사처벌로 끌어들이는 '민사의 형사화'를 초래해 기업의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안 교수는 주요국 사례도 비교했다. 독일은 배임 미수범을 처벌하지 않고 업무상 배임에 대한 가중 규정도 두지 않는다. 일본은 고의 외에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꾀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라는 엄격한 주관적 요건을 요구한다. 미국과 영국은 배임죄 규정 자체가 없고, 유사 조항이 있더라도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아울러 안 교수는 배임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경영판단원칙의 명문화 △배임죄의 전면 폐지 후 필요한 유형만 별도 구성요건으로 입법 △구성요건의 정교화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배임죄의 모호성과 사후적 평가 관행이 과도한 형사책임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홍영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부원장은 "타인의 '재산상 이익'을 박탈하거나 침해하는 죄는 배임죄밖에 없다"며 "모호성을 이유로 법 자체를 폐지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실무 규정을 마련해서 개별 사안마다 이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원 세종대 교수는 배임 사건에서 결과 중심의 사후 평가가 작동하며 피고인에게 무죄 입증 부담이 집중되는 재판 관행을 지적했다. 그는 "기업인들이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되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이 나오기까지 불가피하게 자기방어에 자원을 투입하고, 결국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류혁선 KAIST 교수 역시 배임죄 해석이 '신의칙 위반'까지 확장되며 형사책임이 과도하게 넓어졌다고 진단했다. 류 교수는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의 경계를 보다 명확히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진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단순한 경영 실패가 형사책임으로 전이되는 문제를 방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 태스크포스(TF) 단장은 "경제계가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사안이 경영판단원칙의 명확화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배임죄 개편의 입법 형태와 관계없이 정상적인 경영판단을 배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는 반드시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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