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영해 수색·검문 강화만으로도 사실상의 봉쇄 효과가 발생 가능하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이 대두되자 이같이 분석했다. 전체 폭 55㎞, 유조선 통항이 가능한 구간은 10㎞ 이내에 불과하지만 세계 석유 해상 교역량의 27%가 이 해협을 통과하기에 '호르무즈 리스크'는 곧바로 글로벌 원유 수급 문제로 직결된다.
이란은 안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만지작 거려왔다. 아직 호르무즈 해협을 100% 이란 측이 통제하는 것에 성공한 전례는 없다. 그럼에도 유가는 매번 출렁거린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의 공습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이란 측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유조선 입장에선 '굳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심리가 발생하게 된다"며 "선박들 입장에선 일단 관망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류 대란도 우려된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위치한 선박들의 발은 사실상 묶인 상태로 보인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 해운업체 머스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선원과 선박 그리고 고객 화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이란 인근 해역인 호르무즈 해협과 수에즈 운하 통행을 중단하고, 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오만에 있는 자사 사무소를 폐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른 대형 해운업체인 MSC는 걸프만 내 자사 선박들에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지정된 안전 대피 구역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국내 선사들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당장 통행에 위협을 받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선사들은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통과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해외 선사를 비롯해 일부 선사는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현지 인근에서 대기하거나 운항 속도를 조절하며 눈치 보기에 들어갈 게 유력하다.
항공업계 역시 중동 노선 운항을 일시 중단하며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사 중 중동 노선인 인천-두바이 노선을 유일하게 주 7회 운항했는데 오는 5일까지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중동행 항공편은 정상 운항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한항공 측은 향후 현지 상황과 안전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운항 재개 시점과 스케줄 조정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 운송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과 이란 사이 갈등은 주로 페르시아만 지역에 집중돼 있으나 해운사들은 이란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서쪽 홍해에서 선박 공격을 재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국내 산업계 입장에서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은 원유 등 주요 에너지 수급 대부분을 중동에 기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이 1주일 이상 지속된다면 정유 업계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수급 불안정 문제가 본격 대두될 것이란 전망이 자연스레 나온다. 무역협회는 유가 10% 상승 시 △수출 0.39% 감소 △수입 2.68% 증가 △기업 생산 원가 0.38% 증가 등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원유 수급 불안 속에 유가가 급등하면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나면서, 제조원가까지 뛰며 물가가 상승하게 된다.
호르무즈 해협 폐쇄 시 우회 항로 이용에 따른 추가 비용은 기존 해상운임 대비 최소 50~80%까지 급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선사들 입장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우회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공급망 병목 현상이 심화하고 해상운임 지수가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란·이스라엘에 근무 중인 직원들을 UAE·이집트·요르단 등으로 대피시켰다. UAE, 카타르, 이라크의 직원들은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LG전자는 중동 근무 직원들의 이동 자제를 권고했다.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은 중동 현지 임직원들의 안전과 관련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