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배터리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 이력이 있는 배터리 셀이 탑재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부당 유인한 메르세데스 벤츠(이하 벤츠)가 100억원대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일 본사 및 한국 법인에 대한 검찰 고발도 결정했다.
공정위는 벤츠의 이같은 부당 고객유인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게 과징금 112억3900만원 부과를 결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행위에 따른 제재로는 '쿠팡' '핸드폰 출고가 부풀리기'건 이후 역대 3번째 과징금 규모다.
공정위는 또 벤츠코리아 및 독일 본사를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공정위는 2024년 8월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를 계기로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벤츠 전기차에서 불이 나 주민 수십여명이 대피하고 100여대 이상의 차량이 전소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해당 벤츠 차량의 배터리 셀이 당초 알려진 CATL 제품이 아닌 파라시스 제품이란 사실이 공개되면서다.
CATL은 전세계 배터리 셀 점유율 1위 사업자로 파라시스에 비해 점유율과 인지도, 기술력 등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반면 파라시스는 벤츠 전기차의 국내 출시 직전인 2021년 3월 중국에서 배터리 화재 위험으로 대규모 리콜된 이력이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벤츠는 자신과 제휴한 딜러사들이 차량 판매 영업 시 활용할 수 있도록 2023년 6월 벤츠 EQE 및 EQS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셀 제조사 등 주요 정보가 담긴 '차량 판매지침(EQ Sales Playbook)'을 제작해 배포했다. 지침에는 파라시스 배터리 셀 탑재 사실은 누락·은폐하고 마치 모든 차량에 CATL 배터리 셀이 탑재된 것처럼 기재했다.
구체적으로 파라시스 배터리 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CATL을 선택한 이유' '전세계 시장점유율 1위' 등 CATL 배터리 셀의 우수성과 장점만 넣었다. 배터리 셀 제조사 관련 소비자 질의에는 CATL 배터리 셀의 우수성을 강조해 차량판매 영업을 하라고 딜러사에 안내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출시된 EQE 차량 6개 모델 중 4개 모델, EQS 차량 7개 모델 중 1개 모델에는 파라시스 배터리 셀이 탑재돼있었다.
배터리 셀은 전기차의 성능과 안전성과 직결되는 핵심 부품으로,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구매할 때 중요한 선택 요소로 고려한다. 벤츠코리아가 판매지침 과정에서 딜러사들을 상대로 가장 답변하기 어려운 소비자 질문이 무엇인지를 조사했는데, 딜러사 직원 약 3분의 1(46명 중 15명)이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벤츠는 해당 판매지침을 딜러사에 전파하고 고객 영업 시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딜러사는 파라시스 배터리 셀 탑재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소비자들에 CATL 제품이 탑재된 것으로 안내하며 차량 판매 영업을 했다. 소비자들은 딜러사의 설명과 안내만 믿고 자신이 구매한 차량에 CATL 배터리 셀이 탑재된 것으로 오인할 수밖에 없었다.
벤츠가 딜러사에 판매지침을 공지한 2023년 6월8일부터 차종별 배터리 셀 제조사를 공개하기 전날인 2024년 8월12일까지 파라시스 배터리 셀이 탑재된 차량은 약 3000대 팔렸다. 판매금액은 약 2810억원이다.
공정위는 이 사건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이 큰 점을 고려해 현행 법령상 불공정거래 행위에 부과할 수 있는 최대 부과기준율(관련매출액의 4%)을 적용해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금까지는 쿠팡 사건에서 적용된 2% 부과기준율이 최고였다.
또 벤츠코리아가 해당 판매지침을 독일 본사에 사전에 보고했고, 본사는 해당 지침을 우수사례로 선정해 다른 나라에도 소개·전파하는 등 법 위반행위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고 독일 본사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황원철 공정위 상임위원은 "자동차 제조·판매업자가 전기차 배터리 셀 제조사 정보를 누락·은폐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기만한 행위를 제재한 첫 사례"라며 "이 사건 제재가 피해 차주들의 손해배상소송 등을 통한 피해 구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