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쓴맛에 성장 멈추는 기업들[기자수첩]

김남이 기자
2026.03.13 05:50

중소기업인에게 기업의 성장은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다. 경제단체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규제는 94개 늘고, 대기업이 되면 규제가 329개로 증가한다.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 커지면 각종 세제·금융 지원에서 제외되고 다양한 규제에 직면한다.

기업이 성장하면 책임과 규제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성장에 따른 규제의 무게가 지나치게 무겁다. 규제의 쓴맛과 혜택의 달콤함을 맛본 기업들은 중견기업으로 성장을 꺼리고 '피터팬'으로 남는다. 보호 중심 정책에 자생적 역량을 쌓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최근 '규제개혁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구인 '규제합리화위원회'로 격상됐다. 다양한 분야의 경제·산업계 전문가와 정책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위원회 구성도 눈길을 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구조라는 점에서 정부가 규제 문제를 핵심 경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규제는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문제는 규제의 존재가 아니라 과도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부분이다. 재계는 줄곧 글로벌 기준에 맞춘 규제 체계,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의 전환 등을 꾸준히 요구했다.

'전봇대 뽑기'와 '손톱 밑 가시', '신발 속 돌멩이' 등 어느 정부든 규제를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혁파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력이 약해지고,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흐지부지된 사례가 적지 않다. 이에 규제를 개혁이 아닌 '합리화' 대상으로 보는 시각 변화는 반갑다.

요즘 기업 대관 관계자들이 부쩍 바빠졌다고 한다. 정부 부처에서 원활한 기업 활동을 위한 정책 아이디어를 요청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규제 합리화를 둘러싼 정책 논의가 실제로 진행 중이라는 반응도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그동안 반복돼온 '용두사미'의 기억을 동시에 떠올린다.

이번 규제 합리화가 또 하나의 구호로 끝날지, 아니면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규제 합리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는 구호가 아닌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