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문제 때문에 난리가 났다. 사실 저도 잠이 안 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대한민국은 재생에너지로 신속하게 전환해야 한다. 화석에너지에 의존하면 미래가 매우 위험하다."(이재명 대통령, 3월 30일 제주 한라대 타운홀미팅)
"이번 기회에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신속하게, 대대적으로 하는게 어떨까."(이재명 대통령, 중동전쟁으로 소집된 3월 5일 임시 국무회의)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중동사태를 계기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여러차례 낸 가운데 에너지 위기가 재생에너지 전환을 전세계적으로 가속한다는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재생에너지 팩트체크 플랫폼 리팩트(RE:FACT)는 국내·외 관련 데이터·보고서·학술논문을 토대로 중동발 에너지 위기와 재생에너지 전환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리팩트 리포트'에서 "중동위기가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한다"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재생에너지가 '경제적 완충재' 역할을 하며 더 많은 국가·기업의 선택지가 된다는 것이다.
리팩트가 인용한 유진투자증권 자료에 따르면 최근 중동발 에너지위기 국면에서 유럽연합(EU)의 전기요금 상승은 2022~2023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보다 제한적이었다. 2022년 1메가와트시(MWh)당 227.1유로까지 치솟았던 EU의 연간 평균 전력 도매 가격은 2026년에는 연초부터 현재까지 평균 108.8유로에 머물렀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급격히 확대한 영향이다. 지난해 EU의 재생에너지 비중(30%)은 화석연료 합계 비중(29%)을 사상 처음 앞질렀다.
반면 한국 등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여파는 다른 지역보다 컸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가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일본·필리핀 등 아시아의 석유·가스 순수입국들은 이란 분쟁 발발 후 첫 7일 동안 2020년 이후 최대폭의 통화가치 하락을 겪었다. 미국의 이란 공격 전일인 2월 27일 1466.5원/달러이던 환율은 일주일 후인 3월 6일 1485원/달러, 트럼프가 '대대적 공격' 연설을 한 4월 2일 1521원/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들 국가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발발 후에도 미 달러 대비 통화가치 급락을 경험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아 지정학적 위기가 금융시장 외 실물경제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지난달 에너지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월 한국의 1차 에너지공급량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3.5%, 수입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에너지 수입의존도)은 93.7%였다. 특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원유 중 약 71.5%를 중동·호르무즈 해협을 통해서 들여온다. 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E3G 역시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해상 운송 전략 병목지점' 교란에 구조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경고했다.
에너지 수입비용 상승과 통화가치 절화는 국영 에너지기업의 재무도 악화한다. IEEFA는 "2022년 한국전력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최종 소비자 요금이 동결되면서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며 "여전히 205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와 치솟는 이자 비용, 그리고 향후 연료 가격 급등에 대한 취약성으로 인해 지급 능력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가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에너지 충격을 줄여줄 수 있다고 다수의 보고서·연구결과가 진단했다. 이미 유럽에서는 실증 자료로 입증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EU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국제 에너지가격이 급등했을 당시 신규 태양광·풍력 설비 덕분에 약 1000억 유로(한화 약 173조원)를 절약했으며 재생에너지 확대가 없었다면 유럽의 평균 전력 도매가격은 8% 더 높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정학적 위기는 아시아에서도 재생에너지 소비 비중을 높이는 경향으로 이어졌다. 베트남 은행 아카데미 연구팀은 아시아·태평양 주요 신흥국 12개국(2000~2021년)을 분석한 결과 지정학적 위험 발생이 재생에너지 소비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IEEFA는 "1기가와트(GW)의 태양광 용량이 연간 16만 톤(MTPA)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요를 잠재적으로 대체해 현재 가격(3월 중순) 기준으로 연간 1억2800만 달러, 태양광 발전소의 수명기간 동안 30억 달러(한화 약 4조 원) 이상의 LNG 수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태양광 발전 시설의 수명이 약 20~30년임을 감안하면 약 23년간 이 정도의 비용이 절감된다는 추산이다.
중동사태 이후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공급망 불안정 및 가격 급등을 완충하기 위한 선택지로 급격히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이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트럼프의 전쟁은 그가 혐오하는 청정에너지 부문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역설을 환기했다. FT는 "석유와 가스 가격이 계속해서 상승하면서 생산자들의 단기적인 수익은 증가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번 위기가 수입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 세계적인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 예상했다.
전영환 리팩트 전문위원회 위원장(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21세기 들어 연료비가 '0'원인 재생에너지 기술과 에너지 효율화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럽, 아시아 각국은 지정학적 위기로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던 시기에 더욱 에너지 전환을 가속했다는게 리팩트 검증 결과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1, 2차 오일쇼크 때 원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원전, LNG 등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전환을 가속했던 역사가 있다"며 "이번 중동 위기 역시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우리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전히 탈피하는 에너지 주권 확립의 결정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리팩트는 재생에너지 관련 허위정보 및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주장과 근거를 데이터·연구 중심으로 검증해 사실 기반 논의를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플랫폼이다. 학계와 산업계 인사 12인으로 구성된 전문위원회와 전문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난 12월 출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