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기차보조금 기준개편은 관련 정책의 무게중심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이동한 신호로 해석된다. 전기차 보급확대를 넘어 산업기여와 공급망 경쟁력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재설계됐다는 평가다.
그동안 전기차보조금은 차량가격과 1회 충전 주행거리, 에너지효율 등 성능 중심 기준에 따라 차등지급됐다. 국산차와 수입차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 기준을 적용하면서 차량상품성이 보조금 수준을 좌우하는 구조였다. 이러한 방식은 초기시장에서 보급확대를 빠르게 이끌어내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기업의 국내생산이나 부품생태계 기여 여부를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올해를 기점으로 빠르게 증가하며 사실상 대중화 단계에 진입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전기차 판매량은 4만2031대로 전년 동기 대비 135.4% 늘었다. 특히 지난해까지 대세로 꼽힌 하이브리드 판매량(4만1524대)을 2달 연속 넘어섰다. 현대차·기아를 중심으로 테슬라·BYD 등 수입 전기차업체들의 판매가 확대된 영향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보조금 예산이 조기에 소진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정된 재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할 필요성이 커졌고 이러한 정책판단이 보조금 지급기준을 판매사까지 확대하는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단순히 판매량 확대에 집중하기보다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해 지원대상을 선별해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이번 개편에서 눈에 띄는 점은 정성평가 비중이 60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산업기여도와 공급망, 사후관리 체계 등이 핵심 평가요소로 반영되면서 차량 자체 경쟁력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아울러 국내 부품업체와의 협력, 기술이전, 부품조달 비율, 정비망 구축수준 등이 평가항목에 포함되면서 국내 생산기반과 서비스 인프라를 갖춘 업체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형성됐다.
특히 정량과 정성을 합산해 80점 이상을 받아야 보조금 지급대상이 되는 구조인 만큼 수입차업체는 점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별다른 국내투자 없이 판매 중심 전략을 이어온 일부 업체의 경우 하반기부터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수입업체들의 국내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자국생산 차량에 유리한 구조를 통해 시장을 키워온 것처럼 국내 역시 보조금체계 개편을 통해 투자유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책방향도 보급확대에서 나아가 산업기반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다만 정책전환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산업경쟁력 강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수입차업체에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경우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중국, EU와 달리 시장규모나 정책영향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같은 조치가 통상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기술인협회장(대림대 자동차학부 교수)은 "보조금을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질적으로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바꾸는 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맞다"면서도 "수출 위주 국가인 우리나라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등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