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리스크 또 터질라… 기업들 '공급선 다변화' 속도

최경민 기자
2026.04.09 04:03

원유·나프타 선박 와야 안심
안보이슈마다 항행통제 우려
홍해·오만 통과 물량 확대 등
중동 의존도 낮추기 전략 시급

"며칠 지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8일 미국과 이란의 휴전 소식이 전해졌지만 정유·화학업계는 반신반의하면서 원유와 나프타를 실은 선박이 호르무즈해협을 자유롭게 통과하기 시작해야 안심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그만큼 미국·이란 양측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는 바닥을 친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 봐도 지난 2월28일 이란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 이후 "전쟁을 조만간 끝낼 것"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 등과 같이 상반된 메시지를 쏟아냈다. 이란도 그동안 외교·안보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만 언급하던 것을 넘어 실질적인 통제를 단행했다.

호르무즈해협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중동산 원유와 석유제품이 오가는 주요 루트로서 역할은 하겠지만 이란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국도, 이란도 '통항료'를 거론한다. 호르무즈해협에서 통항료를 받아 이란 재건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지역안보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호르무즈해협 항행이 통제될 수 있다는 심리가 널리 퍼지게 됐다"며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원유 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경고한 가운데 유조선이 오만 무스카트에 정박해 있는 모습. /로이터=뉴스1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한국 정유·화학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 수입된 원유의 61%, 나프타의 54%가 이 해협을 지났다. 국내 정유·화학기업들은 이란사태 이후 원유·나프타 수급난 속에 중동 외 지역에서 단기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런 시도가 중장기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원유의 경우 호르무즈해협을 거치지 않고 홍해나 오만 쪽으로 통과되는 물량비중을 키우는 방식도 거론된다. 미국산 경질유 도입확대 역시 가능하지만 정제시설 투자를 늘려야 하는 부담이 있다. 베트남에 원유광구를 보유한 SK어스온과 같은 기업의 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카자흐스탄·알제리 등과의 원유협력 확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나프타는 인도·아프리카 등에서 대체 공급선 확보가 이뤄질 수 있다.

일단 호르무즈해협이 열리는 게 관건이다. 수급처 다변화는 중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할 프로젝트로 당장의 불을 끄기 위해서는 중동산 원유와 나프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치솟은 유가에 배럴당 수십 달러 규모의 프리미엄까지 더해 원유를 확보해야 했는데 종전된다면 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나프타 물량확보가 시급하다. 일각에서는 당장 호르무즈해협이 열려도 4월 말이나 5월 초쯤 나프타 수급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화학사들이 보유한 나프타로는 4월까지 버틸 수 있고 중동에서 국내까지 선박이 들어오는데 3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서다.

정부는 국내 정유사들이 생산하는 나프타를 충분히 활용하며 버틴다는 전략을 세웠다. 석유화학업계는 가동률을 60~70%대까지 낮추고 일부 생산시설은 셧다운하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한다. 일부 화학사는 나프타와 성질이 비슷한 LPG(액화석유가스) 활용을 늘려 에틸렌·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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