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이다.' 최근 만난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철강업계가 처한 현실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철강 관세를 50%로 인상하고 무관세 수입 쿼터 축소에 나서면서다. 미국과 EU만의 일은 아니다. 전세계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앞세워 철강 수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철강 시장의 판도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대표적인 철강 수출국인 한국으로선 뼈아픈 변화다. 실제 지난해 국내 철강 제품 수출액은 303억달러로 전년보다 9%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도 하락세는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과 중국처럼 대규모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수출 감소분을 흡수할 여력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각국이 앞다퉈 철강 수입 장벽을 높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철강산업이 단순히 하나의 업종이 아니라 국가 제조업 경쟁력을 떠받치는 기반 산업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조선, 건설, 기계, 방산에 이르기까지 철강이 쓰이지 않는 산업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철강산업이 흔들리면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우리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열연강판, 후판 등 주요 품목에 대해 중국산 저가 철강재를 대상으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대표적인 지원책으로 꼽히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K스틸법)'은 오는 17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세제·보조금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미래 철강 기술 개발과 설비 전환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업계가 줄곧 요구해온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방안은 제외됐고, 생산량 조정을 위한 구조조정 역시 기업 자율에 맡겨졌다.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강재 등 신규 수요처 발굴과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이 같은 자구 노력만으로는 고율 관세, 줄어드는 내수 시장, 중국발 공급 과잉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기 쉽지 않다.
철강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국가 안보, 산업 경쟁력과 직결돼 있다. 한시적으로라도 기업들이 위기를 버틸 수 있도록 생산비 부담을 덜어주는 등 보다 실효성 있는 후속 대책이 마련돼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