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항구의 변신…지역소멸 위기가 앞당긴 에너지 전환

목포·신안·해남(전남광주)=권다희 기자
2026.07.18 06:30

[스마트에너지리포트]왜 호남인가: 지산지소의 경제학
②약한 산업기반이 기회로…자연조건+지자체 정책에 에너지전환 가속

지난 7월13일 목포신항 일부가 해상풍력 배후항만으로 쓰이고 있는 모습. 현재는 전라남도 영광군 안마도·송이도 인근 해역에 조성되고 있는 낙월해상풍력단지에 쓰일 기자재가 놓여 있다. 앞서 건설된 전남해상풍력1단지도 이 항만을 배후항만으로 이용했다./사진=권다희 기자

농사를 짓던 간척지는 태양광발전소로, 자동차를 취급하던 항만의 일부는 해상풍력 기자재를 보관·조립하는 배후항만으로 바뀌었다. 작은 어항에는 인근 바다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를 관리하는 운영·정비(O&M) 선박이 드나들고 있다.

지난 13~14일 찾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이하 전남광주) 해남군의 솔라시도 태양광발전소와 신안군 생낌항, 목포신항은 호남에 재생에너지 기반시설이 축적된 과정을 압축해 보여줬다. 넓은 간척지와 풍부한 일조량은 태양광발전의 토대가 됐고, 서남해의 얕은 수심과 수많은 섬, 적절한 풍황은 해상풍력발전의 기반이 됐다.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소 일부의 모습/사진=권다희 기자

넓은 땅·햇빛·바람이 산업자원으로

태양광발전소를 대규모로 조성하려면 일사량뿐 아니라 넓은 부지와 평평한 지형이 필요하다. 전남광주와 전북특별자치도 서해안에 넓게 펼쳐진 평야와 간척지는 이 지역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서게 된 배경이다. 평지에서는 설치 작업도 그만큼 빨리 끝난다. 솔라시도 태양광발전소도 약 1.6㎢ 규모 간척농지에 조성됐는데, 2019년 5월 모듈 설치를 시작해 같은 해 12월 대부분의 설치를 마쳤다.

문옥식 솔라시도 태양광발전 대표는 "산악지역과 달리 이곳은 평평한 간척지여서 시공 난도가 높지 않았다"고 전했다. 상업운전 7년 차에 접어든 현재는 바람도 발전 효율을 높이는 조건으로 꼽힌다. 문 대표는 "태양광 패널이 지나치게 뜨거워지면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데, 패널을 식혀 줄 바람이 풍부한 점도 태양광발전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조건은 이 지역 해상풍력 경쟁력의 기반이기도 하다.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국내 총 33.7기가와트(GW) 해상풍력 사업 중 21GW가 전남광주 바다에 몰려 있다. 풍속이 우호적이고 수심이 깊지 않아 고정식 해상풍력에 유리하다. 최정철 국립목포대학교 기계조선해양공학부 교수는 "서남해는 바다가 얕고 섬이 많아 섬과 섬 사이에 고정식 해상풍력을 설치하기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제주보다 풍속은 낮지만 육지 전력계통과 연결된 것도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해상풍력 지역별 설비용량 및 점유율(전기사업허가 취득 사업 기준)/그래픽=김지영(사진출처=SK이노베이션E&S)

약한 산업기반·인구 감소…절박함이 전환 재촉

호남이 재생에너지 중심지로 부상한 것은 단지 햇빛이 강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만은 아니다. 농림어업 의존도가 높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자 지역경제를 개선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 동력이 커졌다.

국가데이터처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취업자 가운데 농림어업 종사자 비중은 전남이 99만7000명 중 19만2000명(19.3%), 전북이 97만9000명 중 14만1000명(14.4%)이었다. 모두 전국 비중인 4.8%를 크게 웃돌았다.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해 일자리 창출이 더뎠고, 이는 청년층의 지역 이탈을 부추겼다.

전북 및 전남권 인구 변화 추이 등/그래픽=윤선정

그 결과 고령화와 인구 감소도 빠르게 진행됐다.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전남이 27.4%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았고, 전북도 25.4%로 전국 평균인 20.3%를 웃돌았다. 호남지방데이터청이 분석한 2024년 소멸위험지수에서도 전북은 0.38, 전남은 0.32로 모두 '위험 진입' 지역에 포함됐다.

기존 산업만으로 청년층 유출과 인구 감소를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넓은 땅과 햇빛, 바람은 지역이 활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규모 산업자원이었다. 지자체가 재생에너지를 단순한 발전사업이 아니라 지역산업 회복 마중물로 받아들인 이유다.

지방소멸 위험지수 추이/그래픽=윤선정
지자체가 속도 높이고, 발전소가 산업기반으로

지자체의 적극성은 사업의 속도를 높였다. 재생에너지 사업 과정에는 무수한 인허가가 필요하다. 태양광은 토지 소유자와 마을 주민, 해상풍력은 어민 등과의 협의가 필수다. 사업자가 직접 주민들과 보상·사업 참여 조건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커지면 사업은 수년간 지연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의지는 사업의 속도와 주민 수용성을 좌우하는 변수가 된다.

신안군 연안에 있는 96메가와트(MW) 규모 전남해상풍력 1단지(전남1)를 관리하는 전남해상풍력 주식회사(JOWP)의 정안제 운영·정비(O&M) 총괄부사장은 "초창기 항만 사용 등에 대해 주민과 협의하는 과정을 신안군이 지원했다"며 "민간 사업자가 주민과 직접 접촉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신안군, 전라남도 등 지자체가 사업자와 지역주민의 소통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목포신항의 모습. 해상풍력 단지 건설에 쓰일 풍력 터빈 타워가 놓여 있다./사진=권다희 기자

지자체가 주민 수용성을 높이고 기반시설 조성을 지원하면서 개별 발전소는 점차 지역의 산업 기반으로 연결됐다. 현재 전남1 해상풍력단지의 O&M센터에는 30명 안팎의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이 인근 지역에서 생활하고 식사하면서 이 센터가 위치한 신안군 암태면 일대에 규모는 작지만 눈에 보이는 경제적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향후 대기 중인 해상풍력 사업들이 계획대로 준공되면 발전기 운영·정비, 항만·물류, 기자재 생산 등 지역 산업에 새로운 고용 창출도 예상된다.

한발 더 나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 군공항 부지에 반도체 팹 4기를 건설하는 계획이 발표되고, 솔라시도에 국가 AI컴퓨팅센터와 추가 데이터센터 투자가 검토되는 등 풍부한 재생에너지 기반은 산업 유치의 지렛대가 됐다. 최 교수는 "향후 반도체 수출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이 무역 장벽이나 납품 조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비하는데도 지역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이 기업에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상풍력단지 전남1을 관리하는 O&M센터 전경. 신안군 암태면에 위치해 있다./사진=권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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