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에너지 리포트
기후변화 대응·에너지안보·인공지능(AI) 고도화 등 다양한 변수가 에너지 생산·이용·소비의 모든 과정을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 변화가 지속가능하게 이루어 지려면 무엇이 필요할 지 머니투데이가 다양한 주제를 통해 살펴 본다.
기후변화 대응·에너지안보·인공지능(AI) 고도화 등 다양한 변수가 에너지 생산·이용·소비의 모든 과정을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 변화가 지속가능하게 이루어 지려면 무엇이 필요할 지 머니투데이가 다양한 주제를 통해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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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암태면 생낌항. 어선들이 드나드는 작은 항구 한쪽에 흰색 작업선 한 척이 묶여 있다. 바다 위 풍력발전기로 정비인력을 실어 나르는 승무원수송선(CTV)이다. ━ 어선 옆 해상풍력 정비 선박━이 선박은 생낌항에서 배로 약 45~50분이 걸리는 신안군 자은도 북서쪽 해상의 전남해상풍력1단지(전남1) 운영·정비(O&M)를 담당한다. 항구에서 5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전남1 O&M 센터가 이 작업을 담당하는 거점이다 . 전남1은 SK이노베이션E&S와 덴마크 재생에너지 투자·개발사 코펜하겐인프라스트럭처파트너스(CIP)가 조성한 96메가와트(MW) 규모 해상풍력단지다. 지난해 5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풍력발전기 10기가 설치돼 있다. 1년 여 간 사고 없이 가동된 비결이 이 O&M 센터다. 발전기는 바다에 있지만 운영의 거점은 육지의 O&M센터다. 센터 2층 관제실에서는 이 풍력발전기들의 운전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정비에 필요한 부품과 장비를 보관하는 창고도 이 센터에 있다.
지난 13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산이면 솔라시도 태양광발전소. 발전소 한가운데 위치한 전망대에 오르자 25만 장의 태양광 패널이 넓은 땅을 가득 메운 모습이 펼쳐진다. 여의도 면적의 절반을 웃도는 1. 6㎢ 부지에 자리한 이 태양광발전소 한쪽에는 직사각형 건물 20개 동이 두 줄로 늘어서 있다. 306메가와트시(MWh)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자리 잡은 건물이다. 상업운전 7년째에 접어든 이 발전소가 출력제어 없이 가동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낮에 남는 전기, 저장 후 전력망으로━솔라시도 발전소는 98MW 태양광 설비에 306MWh 규모의 계통연계형 ESS를 결합했다. 태양광 패널이 낮에 생산한 전기를 ESS에 저장한 뒤 전력변환장치(PCS)와 변압기를 거쳐 154킬로볼트(kV)로 승압해 한국전력이 운영하는 전력망으로 보내는 구조다. 태양광 설비와 연계된 ESS로는 국내 최대급 규모다. 태양광은 해가 떠 있는 동안 전기를 생산한다. 전력 수요가 적거나 송전망에 여유가 없을 때 전기가 한꺼번에 많이 생산되면, 발전소가 만드는 전기의 양을 강제로 줄이는 출력제어가 이뤄진다.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이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직접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는 원자력·가스 등 다른 발전원의 전기와 함께 한국전력이 운영하는 전국 전력망에 들어가고, 공장들은 이 전력망에서 필요한 전기를 공급받는다. ━전기 남는 호남…수요처 오면 송전망 부담↓━그럼에도 발전시설이 밀집한 호남에 대규모 전력 수요처가 들어서는 것은 비용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호남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까지 보내기 위한 장거리 송전망의 건설 부담을 줄이고, 송전망 증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민 수용성 문제도 완화될 수 있다. 지역 내 전력망이 보강되면 발전량에 비해 수요가 적어 발생하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줄여 버려지는 전기도 감소된다. 호남에서도 특히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이하 전남광주)는 전력을 쓰는 양보다 생산하는 양이 월등히 많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EPSIS)에 따르면 2024년 전남광주에서 생산된 전력은 72. 6테라와트아워(TWh)로, 같은 기간 전력소비량(판매량 기준) 42.
농사를 짓던 간척지는 태양광발전소로, 자동차를 취급하던 항만의 일부는 해상풍력 기자재를 보관·조립하는 배후항만으로 바뀌었다. 작은 어항에는 인근 바다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를 관리하는 운영·정비(O&M) 선박이 드나들고 있다. 지난 13~14일 찾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이하 전남광주) 해남군의 솔라시도 태양광발전소와 신안군 생낌항, 목포신항은 호남에 재생에너지 기반시설이 축적된 과정을 압축해 보여줬다. 넓은 간척지와 풍부한 일조량은 태양광발전의 토대가 됐고, 서남해의 얕은 수심과 수많은 섬, 적절한 풍황은 해상풍력발전의 기반이 됐다. ━넓은 땅·햇빛·바람이 산업자원으로━태양광발전소를 대규모로 조성하려면 일사량뿐 아니라 넓은 부지와 평평한 지형이 필요하다. 전남광주와 전북특별자치도 서해안에 넓게 펼쳐진 평야와 간척지는 이 지역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서게 된 배경이다. 평지에서는 설치 작업도 그만큼 빨리 끝난다. 솔라시도 태양광발전소도 약 1. 6㎢ 규모 간척농지에 조성됐는데, 2019년 5월 모듈 설치를 시작해 같은 해 12월 대부분의 설치를 마쳤다.
지난 13일 찾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산이면 솔라시도 기업도시.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넓고 평평한 간척지 한가운데 세워진 'RE100 산업단지(재생에너지 100% 사용 산단)' 팻말 옆에서 주황색 콘크리트 펌프카가 긴 작업팔을 뻗은 채 작업에 한창이다. 삼성에스디에스(삼성SDS)컨소시엄이 참여해 솔라시도에 구축하는 총사업비 2조5000억원 규모의 국가 인공지능(AI) 컴퓨팅센터 공식 착공식을 앞두고 부대 공사가 시작된 현장이다. 이곳에서 시작된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삼성 한 곳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머니투데이 취재 결과 삼성SDS 컨소시엄 및 삼성 이외에 최소 6개 사업자가 솔라시도에 데이터센터 건설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삼성 측이 국가 AI컴퓨팅센터를 포함해 솔라시도에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투자하겠다고 밝힌 액수는 17조원이다. 추가 사업자들의 계획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면 솔라시도에 유입되는 관련 투자 규모는 '17조원+α'로 불어나게 된다. 오랫동안 조감도 속 계획으로 남아 있던 솔라시도에 대규모 첨단산업 시설들의 입주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풍력발전기 고장 예측을 넘어 발전량 예측까지 나아갈 계획입니다. " 지난 19일 제주시 오라동 두산에너빌리티 윈드파워센터(WPC)에서 만난 최인욱 WPC 센터장(수석)은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발전량 예측 정확도가 발전사업자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WPC에서는 기존 풍력발전기 상태 진단 AI에 더해 풍황 데이터와 운전 이력, 설비 상태 등을 함께 반영한 발전량 예측 AI 기능을 개발 및 고도화하고 있다"며 "단기 예측 모델은 이미 실증 단계에 들어갔고, 한 달 이상의 중장기 예측 모델도 하반기부터 실증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WPC는 국내 최초 '풍력발전기 전국 통합 관제센터'다. 지상 2층, 연면적 496. 34㎡(약 150평) 규모로 현재 전국 10개 지역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80기를 관리하고 있다. 기기별 운영 이력과 축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 기능을 갖춰 운용 시 문제를 조기에 탐지하고 고장을 최소화해 가동률과 발전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분석과 소프트웨어를 무기로 에너지 시장의 판을 바꾼 기업들이 등장했다. 대표 사례는 영국의 테크 기반 에너지 기업 옥토퍼스 에너지다. 2016년 출범한 이 회사는 전통 대형 전력회사들이 장악하던 영국 전력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영국 가정용 에너지 시장에서 2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영국 시장에 진출한 지 9년 만에 영국 최대 에너지 공급업체가 됐다. 1990년대 영국 에너지 소매 시장이 경쟁 체제로 전환된 이후 처음으로 1위 자리가 바뀐 사례다. 성장의 배경에는 옥토퍼스가 자체 개발한 AI·머신러닝 기반 에너지 운영 플랫폼 '크라켄(Kraken)'이 있다. 크라켄은 전력 소비자, 전기차, 가정용 배터리, 히트펌프 등 분산자원을 데이터로 연결하고, 전력시장 가격과 계통 상황에 맞춰 운전 시점을 조율하는 일종의 에너지 운영체제(OS)다. 옥토퍼스 에너지가 지난해 크라켄의 분사 계획을 발표하며 밝힌 바에 따르면, 이 플랫폼은 현재 전 세계 7000만 개 이상 계정과 40기가와트(GW) 이상 전력자산, 전기차 등의 소비자 기기 30만 개 이상을 관리 한다.
'에너지를 위한 인공지능(AI)' 분야는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전력수요 예측, 운영·유지보수(O&M) 등에서 이미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국내에서도 태양광 발전량·수요 예측 등에 일부 도입됐으나, 시장 성숙도가 높은 미국·유럽·일본 대비 아직 시장 규모가 협소한 편이다. ━AI 적용한 전력망·발전 솔루션 등 개발━이 가운데 국내 에너지 AI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분투하는 조직이 있다. 2020년 출범한 LS일렉트릭 디지털전환(DX) 사업개발팀이다. 초기 데이터센터 패키지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이 팀은 현재 AI로 분석한 데이터를 발전 및 전력망에 연계해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 이들이 공들이는 분야는 풍력 발전량 예측 모델 고도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가상발전소(VPP) 사업 진출이다. VPP는 분산된 에너지원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전력망 운영은 복잡해진다.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는 것을 넘어 언제 얼마나 전기가 만들어질지 예측·제어하는 기술이 핵심 과제다.
지난 19일 찾은 제주시 오라동의 두산에너빌리티 윈드파워센터(WPC). 496. 34㎡(약 150평) 규모의 2층 건물에서는 원격으로 전송된 전력 데이터와 설비 신호를 분석하는 모니터링 작업이 365일 24시간 쉼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 곳에서 제주와 서남해 등 전국 10개 사이트에 설치한 풍력발전기 80기와 주요 부품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최인욱 WPC 센터장(수석)은 "풍속, 유압, 냉각 상태 등 기기별로 300여 개 데이터를 수집해 이상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고장을 최소화하는 선제적 유지보수(O&M)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전했다. 센터 2층 전면에 펼쳐진 6개의 대형 모니터는 풍력발전기 위치와 지형 정보, 실시간 수치 등의 현장 데이터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구동 중인 발전기는 초록색, 대기는 파란색, 정비는 노란색으로 표시돼 현장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WPC의 핵심은 자체 개발한 디지털 관제 플랫폼 '윈드링크(Windlink)'다.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가 인공지능(AI) 기반 가상발전소(VPP) 기술과 결합하며 전력자원으로서 가치를 한 단계 높이고 있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고 전기가 남으면 발전소를 강제로 꺼야 했던 한계가 데이터 기반 예측·제어 기술을 통해 새로운 수익 기회로 바뀌는 동시에 전력망에 더 안정적으로 편입될 수 있는 길도 열리고 있다. 22일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에너지 IT 기업 해줌의 '재생에너지 준중앙 급전제도(이하 준중앙제도)' 참여 자원 제어 현황'에 따르면 이 회사의 VPP 플랫폼을 이용하는 태양광 발전소 가운데 준중앙제도에 참여한 발전소들이 그렇지 않은 일반 발전소들보다 발전을 멈췄을 때 손실을 크게 줄였다. 준중앙제도 참여는 전력 수급 상황에 맞춰 출력을 조절하라는 전력거래소의 지시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력거래소의 급전 지시에 따라 제어를 수행한 준중앙제도 참여 발전소들은 3월 5회(총 9시간), 4월 3회(총 5시간), 5월(11일 기준) 3회(총 6시간)에 걸쳐 발전을 조절하는데 그쳤다.
# 영국 기업 에퀴와트(Equiwatt)는 가정이 특정 시간대에 전력 사용을 줄이면 앱에서 포인트와 보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전기를 덜 쓰면 포인트가 쌓이고 순위가 올라가는 일종의 '게임'이다. 목적은 전력 수요 조절이다. 소비자는 스마트폰 게임처럼 참여하지만, 그 결과는 전력망 안정화로 이어진다. # 영국 에너지기업 옥토퍼스에너지(Octopus Energy)는 지난해 전기차 충전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충전 시간을 제어하는 V2G(vehicle-to-grid) 요금제를 출시했다. 전기차를 리스하면 충전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지만 전력망 상황에 맞게 충전 시간을 조정한다. 소비자 편익을 높이면서 동시에 전기차를 전력망 안정화에 기여하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전력망 혁신, 소비자에게 이익으로 느껴져야" ━ 영국 정부 지원 연구기관 에너지시스템 캐터펄트(Energy Systems Catapult)의 앤드류 피스 자문이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에서 가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은 "전력망 혁신은 결국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서비스로 전달될 때 확산된다"는 점이다.
제주에서 시작된 전기차-전력망 연계(V2G) 실증, 계통연계형 에너지저장장치(BESS),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태양광, 풍력, 배터리처럼 흩어진 자원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 답 가운데 하나가 한국전력이 제주에서 운영 중인 유연성 자원 플랫폼이다. ━ 한전, 재생에너지 늘어난 제주서 새 플랫폼 개시 ━ 이 플랫폼은 한전 배전망사업실 주도로 지난해 1월 제주본부에 문을 연 DSO-MD(Distribution System Operator-Market & Dispatch)를 가리킨다. 재생에너지로 대표되는 분산 에너지 사업자들의 전력시장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24년 6월부터 시행 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법적 근거다. 한전 제주본부에서 만난 김건호 전력연구원 배전연구소 유연배전연구실 선임연구원과 고민식 한전 제주본부 배전망사업부 연계운영팀 차장은 이 플랫폼을 "분산에너지 교통정리 시스템"이라 표현했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기처럼 곳곳에 흩어진 에너지가 전력망에 과부하를 주지 않고 안전하게 흐를 수 있도록 조절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