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철강과 화학의 AI 시대 진화
철강·석유화학이 AI(인공지능)의 뼈대를 만드는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랜 불황의 터널을 탈출하기 위한 키워드로 AI가 급부상하는 중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동국제강의 AI 기반 시설용 형강 제품 '디-메가빔(D-Mega Beam)' 주문량은 올해 연간 생산능력을 넘어섰다. AI 인프라 건설이 늘면서 디-메가빔 수요가 빠르게 증가한 영향이다. 현재 신규 주문은 최소 2~3개월에서 늦으면 내년 납품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메가빔은 후판을 용접해 제작하는 초대형 형강이다. 서버랙과 배터리, 냉각설비 등 고하중 설비를 지탱해야 하는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반도체 공장과 첨단 물류센터 등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윤노 동국제강 형강영업담당 이사는 "기존 H형강과 디-메가빔을 패키지 형태로 공급하는 전략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며 "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생산기지의 건설사에 디-메가빔 제안을 진행하고 있고, 해외기업의 국내 진출에도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수요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철강업계가 AI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포스코는 데이터센터·송배전망·에너지저장장치(ESS)·발전·휴머노이드 등에 특화된 신강재 연구·판매 조직을 가동했다. 지난해 약 38만톤이던 AX(AI 전환) 산업용 강재 판매량을 2028년 52만톤, 2030년 100만톤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현대제철은 현재 봉형강 매출의 약 3%를 차지하는 데이터센터용 제품 비중을 향후 6%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같은 이유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석유화학업계도 AI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과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기능 플라스틱과 반도체 패키징 소재, 전력 케이블용 절연재 등 첨단 소재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LG화학은 휴머노이드와 AI 반도체용 소재를, 롯데케미칼은 고기능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각각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한화솔루션은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망 투자에 대응한 케이블용 절연 소재를 공략 중이다.
②더 가볍고 단단한 화학제품
국내 석유화학 산업에도 AI(인공지능) 시대가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되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가전과 자동차 관련 소재 수요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과 AI 데이터센터 관련 프로젝트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휴머노이드가 양산 단계에 접어들면서 소재의 경량화와 대량 생산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는 고기능 소재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AI 시대 새로운 먹거리로 휴머노이드를 낙점했다. 양산의 핵심 과제인 경량화와 대량 생산의 해법으로 '금속의 플라스틱 전환'을 제시했다. 복잡한 형상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플라스틱 사출 기술과 자동차 부품의 금속 대체 과정에서 축적한 소재·설계·양산 노하우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산업용 로봇 프로젝트에서 확보한 소음·진동 저감 기술도 접목해 로봇 외장과 프레임 등 구조 소재 시장를 공략 중이다.
AI 반도체도 핵심 공략 분야다. LG화학은 감광성 절연재(PID)와 칩 접착 필름(DAF), AI 반도체 패키지용 동박적층판(CCL) 등 첨단 패키징 소재를 중심으로 전자소재사업을 2030년까지 매출 2조원 규모로 키울 계획이다. 액상에 이어 필름 PID까지 개발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PC·서버용 DDR5 기판 시장의 글로벌 1위 기술력을 기반으로 AI 서버와 HPC용 고성능 반도체 패키지에 최적화된 CCL도 개발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고기능 소재인 수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Super EP)을 AI 시대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Super EP는 일반 플라스틱보다 강도와 내열성, 내화학성, 전기절연성 등이 뛰어나다. 정전기 방전(ESD) 방지용 반도체 공정 트레이와 초소형 카메라 모듈, 스마트워치 바디, 웨어러블 로보틱스 부품 등 첨단 산업에 폭넓게 쓰인다. 향후 고성능 정밀 부품과 피지컬 AI, 항공우주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차별화 포인트는 컬러 기술이다. 롯데케미칼은 휴머노이드 외장재를 겨냥해 장시간 자외선에 노출돼도 변색과 광택 저하를 최소화한 블랙 컬러 구현 기술을 확보했다.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색상과 광택을 오래 유지할 수 있어 휴머노이드의 외관 품질과 내구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광주전남 율촌 산업단지에 약 3000억원을 투자해 연간 50만톤 규모의 국내 최대 단일 컴파운딩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준공을 앞두고 있다. 향후에는 생산 난이도가 더 높은 고성능 Super EP 제품군까지 생산 라인을 확대할 방침이다.
한화솔루션은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망 투자 확대를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다. 한화솔루션의 초고압 전력케이블 절연재(XLPE·가교 폴리에틸렌) 생산능력은 세계 3위 수준이다. XLPE는 전력·통신 케이블의 절연재와 피복재로 사용되는 핵심 소재로, 한화솔루션은 국내 최초로 전선용 컴파운드(W&C)를 국산화한데 이어 초고압 케이블용 소재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아울러 국내외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망 투자 확대가 예상되자 전선용 고분자 소재 연구개발 강화에도 나섰다. 이달에는 전력 케이블용 절연 소재 개발과 정부 과제를 담당할 연구원을 채용하며 연구개발(R&D) 조직을 확대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전력망 증설도 확대되는 만큼 관련 조직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