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서명'까지 이번엔 짓나..한미 조선협력의 마지막 퍼즐은

김지현 기자
2026.08.16 10:00

美 투자 외국 조선업체 자국 2척 건조…한화 등 K조선 수혜 기대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백신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고,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

2024년 11월7일 당선인 신분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러브콜'을 보냈다. 대선 승리 직후부터 한국에 손을 내민 것이다. 이후 그는 수차례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며 협력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해 8월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선 "미국의 조선업을 한국과 협력해 부흥시키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고, 같은 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선 한국을 "조선업의 대가"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위기감이 만든 '러브콜'…中에 상선·해군력 밀려
미-중 조선업 현황 비교, 미 해군 함정 보유 목표/그래픽=이지혜

트럼프 대통령이 누구보다 'K조선'에 진심인 건 미국의 조선 역량 강화가 그만큼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만 해도 조선업은 미국 주요 산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높은 생산비와 인건비, 경쟁력 약화 등이 겹치며 급격히 쇠퇴했다. 상선 건조의 경우 주도권이 거의 한국과 일본으로 넘어간 수준이다. 현재 미국의 전세계 상선 건조시장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 내 조선 관련 시설은 66곳에 달하지만 실제 선박을 건조하는 곳은 8곳뿐이다.

무엇보다 1기 행정부 때부터 '중국 때리기'에 나섰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 조선업의 급성장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전세계 상선 건조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매년 글로벌 신규 수주 물량의 60~70%를 쓸어 담으며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섰다. 해군력 증강을 위해서도 조선업 재건은 절실한 상황이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 해군 전투함은 293척이다. 반면 중국 해군은 이미 370척을 넘어섰고, 2030년에는 435척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트럼프 파격 선언 "美 투자 기업 본국서 2척 건조"
한화필리조선소 전경 /사진제공=한화그룹

지난 1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투자한 외국 조선업체에 초기 물량 최대 2척을 본국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른바 '핀란드 모델'로 불리는 이 조치는 자국 내 건조를 엄격히 강제하던 '존스법'과 '반스-톨레프슨 수정법'의 빗장을 한시적으로 풀어준 파격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쇄빙선 기술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핀란드에서 중형 쇄빙선을 건조하는 계약을 맺었다. 대통령 권한으로 관련 규정의 적용을 면제할 수 있는 '웨이버' 조항을 활용한 것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미 백악관의 이번 발표가 사실상 한화를 배려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24년 필리조선소를 1억달러에 인수한 한화는 현재 5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해 생산능력 확대에 나선 상태다. HD현대 역시 미국 현지 조선소 투자나 인수를 검토하고 있어 국내 조선업계의 수혜가 잇따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최근 한미 정부는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 개소식을 열고 마스가의 본격 가동을 선언했다. 업계 관계자는 "개소식에서 미국 측이 선박 생산이라는 실질적인 결과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만큼 미국도 급한 상황으로 보인다"며 "국내 건조가 가능해진다면 현지화 초기의 투자 리스크와 인력 부족 문제를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의회 문턱 넘어야…인력·비자 등도 문제
HD현대가 건조한 5만톤급 PC선 /사진=뉴스1

국내 조선사들 역시 미국과의 파트너십을 새로운 성장 기회로 보고 있다. 한화는 필리조선소 인수에 이어 최근 미 해군·해안경비대 함정을 건조하는 오스탈USA에 10억5000만~12억 달러 규모의 인수 제안을 냈다. HD현대는 미국 조선그룹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를 비롯해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 방산기업 안두릴 등과 잇따라 손을 잡았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유지·보수·정비(MRO) 전문 조선사 비거마린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국내 건조로 이어지기까지 넘어야 할 관문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변수는 예산권을 쥔 미 의회다. 최근 백악관 산하 관리예산실(OMB)은 해군이 해외 조선소와 계약해 수상전투함 2척과 비전투 보조함 2척을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지난달 22일 하원을 통과한 국방수권법(NDAA)에는 조선 역량 강화와 인력 양성을 위해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할 필요성이 담겼지만, 전투함의 해외 건조를 금지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하원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상원을 중심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를 재차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상원 군사위원회는 NDAA를 의결하면서 벌크 연료선과 전략수송선을 최대 2척까지 해외 조선소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보안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상선부터 해외 건조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초기 물량 2척을 건조한 이후 미국 내 조선 인프라와 인력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높은 인건비 탓에 숙련 인력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서다. 국내 숙련공을 파견해 현지 인력을 교육하는 과정에서도 비자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발언을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향후 어떤 법적·예산적 조치가 취해질지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미국 진출 기회를 잡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