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을 움직이던 HD현대중공업의 엔진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원으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북미를 중심으로 데이터센터용 엔진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올해 상반기에만 대형 계약을 연이어 따냈다. 밀려드는 문의에 생산능력 확대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는 오는 2030년까지 가용 가능한 울산 중속엔진 생산 슬롯(능력)을 대부분 소진했다. 현재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부문의 중속엔진 생산능력은 연간 약 2.98GW(기가와트)다. 이 가운데 약 1.5GW는 HD현대그룹 내부 물량, 0.5GW는 국내 외부 조선사의 선박용 발전 엔진 수요에 할애하고 있다. 여기에 데이터센터용 수주까지 더해지면서 증설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중속엔진은 고출력·고효율을 바탕으로 24시간 연속 운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엔진이다. HD현대중공업은 독자 브랜드인 '힘센(HiMSEN)' 엔진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선박용으로 주로 쓰였지만, 최근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며 활용처가 넓어지고 있다. 전력망을 거치지 않고 데이터센터 현장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온사이트 발전'의 대안으로 주목받으면서다.
이를 바탕으로 올 상반기 HD현대중공업이 따낸 데이터센터용 중속엔진 누적 수주액은 약 1조5800억원에 달한다. 지난 4월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기업 AEG와 6271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용 발전설비 공급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최근에는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기업 코반에너지그룹과도 9560억원 규모의 납품계약을 맺었다. 이들 엔진은 현지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HD현대중공업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인 핀란드 '바르질라(Wärtsilä)' 등 경쟁사보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수주에 나서고 있다.
올 하반기에도 AI 데이터센터용 수주는 이어질 전망이다. 온사이트 발전에 가장 적합한 설비로 꼽히는 가스터빈이 이미 공급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주요 가스터빈 제조사의 리드타임은 최소 5년까지 늘어났다. 중속엔진은 가스터빈보다 발전 용량은 작지만 여러 대를 병렬로 설치해 필요한 발전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용 엔진은 기존 선박용보다 수익성이 높아 HD현대중공업의 실적 개선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HD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18%에서 2029년 28%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계열사인 HD현대마린솔루션의 유지보수 사업과 연계한 추가 수익도 기대된다. HD현대중공업이 데이터센터용 엔진을 공급하면 HD현대마린솔루션이 애프터서비스를 맡는 구조다. 데이터센터용 발전엔진의 정비 주기가 선박용보다 짧다는 점도 호재다. 실제로 선박용 엔진의 정비 주기는 평균 5년인데 비해 데이터센터용 발전엔진은 약 3년인 것으로 추정된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실제 증설은 필요한 상황"이라며 "시장 상황과 수주 상황을 보면서 순차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단계별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