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스킨만 바르던 터프가이, '잘 꾸미는 예쁜 남자' 됐다

양성희 기자
2018.06.21 15:53

[화장하는 남자들]③꽃미남 각광받던 2000년대 초반 '그루밍족' 탄생…'화장남' 일반화

[편집자주] 여성의 변신만 무죄가 아니다.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피부톤은 투명하게, 눈썹은 선명하게, 입술은 촉촉하게 관리하는 메이크업은 기본이다. 한 번 시작하면 점점 더 다양한 제품을 찾아 쓰는 화장품 시장의 소비법칙이 고스란히 작용한다. 아이돌 등 연예인과 같은 외모가 각광 받고, 첫 인상이 취업 성패를 가르는 사회 분위기도 이 같은 현상을 거든다.

'잘 꾸미는 예쁜 남자'를 남사스럽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가 화장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화장품 시장에 남성용은 기초제품이 전부였고, 남성미만을 강조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시리즈로 출시된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의 남성화장품 '쾌남' 광고가 이를 증명한다. 당시 쾌남 광고는 캠핑, 등산, 펜싱, 승마 등으로 남성의 야성미를 부각했다. 모델인 배우 남궁원이 펜싱을 즐긴 뒤 터프하게 토너를 바르는 식이었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화장하는 남자'가 TV광고 전면에 등장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2002년 소망화장품(현 코스모코스)의 '꽃을 든 남자'가 '컬러로션'을 출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대 최고의 '꽃미남 스타' 축구선수 안정환과 배우 김재원이 어깨를 부딪고 지나가며 "피부가 장난이 아닌데?!", "로션 하나 바꿨을 뿐인데"란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뭇남성들을 색조 화장품에 '입문'시켰다. 꽃미남 열풍이 불면서 이상적인 남성상에 변화가 일던 때였다.

2000년대 초반 안정환, 김재원을 비롯한 꽃미남 스타들이 각광받고 미국에서 탄생한 '그루밍족'이란 신조어가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화장남'은 점점 일반적으로 인식됐다. 남성 전용 화장품 브랜드가 잇따라 탄생한 것도 이 시기다. 화장품 회사들은 브랜드 모델로 남성을 기용하기 시작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이 2009년 '월드스타' 비(정지훈)와 손잡은 것이 한 예다. 현재 모델은 엑소(EXO)다.

숨37° 이종석 광고 이미지/사진제공=LG생활건강

이종석(숨37°), 정해인(듀이트리), 이승기(리더스코스메틱), 갓세븐(더페이스샵) 등 남성 연예인이 화장품 모델로 활동하는 건 더이상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됐다. 브랜드들은 대부분 '예쁜 남자' 이미지로 소구하는데 여기엔 큰 호응이 따른다. 화장을 곱게 한 보이그룹 '세븐틴'이 손으로 브이(V)를 그리고 얼굴을 요리조리 돌리며 일명 '하라케케 댄스'를 추는 영상은 화제가 됐다. 업로드 한달여 만에 유튜브에서 268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중고등학교 교실에선 이 춤이 유행처럼 번졌다. 화장품 브랜드 '더샘'의 '하라케케' 라인 광고다.

전문가들은 외모도 경쟁력이 된 분위기 속에서 우리사회가 '꾸미는 남자', '화장하는 남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쟁사회가 심화하면서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남성들도 자신을 좀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외모를 가꾸는 노력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남성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 '남성들의 화장품 사용실태 및 구매행동에 관한 연구'에서 "여성들의 독립적인 성향이 강해지면서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를 덜 선호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한국에서 남성들이 외모를 가꾸기 시작한 시기는 여성의 사회 참여도가 높아진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이라며 "남성들도 성역할의 변화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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