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건으로 최대 위기를 맞은 쿠팡이 지난 11일 해롤드 로저스 쿠팡Inc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을 임시 대표로 선임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신임 로저스 대표는 창업주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하버드대 동문으로 '최측근이자 실세'로 알려져있다. 이로써 쿠팡은 창사 15년만에 첫 외국인 단독 대표 체제로 운영된다.
이와 관련해 쿠팡 내부에선 "미국 본사(쿠팡Inc)가 직접 사태 해결 의지를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로저스 대표는 취임 직후 사내 공지를 통해 "지금 우리의 우선순위는 명확하다"며 "이번 사태를 철저히 대응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보안을 강화하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번 결정이 오히려 국내 반발 여론을 키울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정치권과 정부 등 각계에선 신속한 사태 수습을 위해 김 의장의 '직접 사과'를 촉구했지만,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대리인'을 앞세운 건 이를 사실상 거부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특히 로저스 대표가 법률 전문가란 점은 앞으로 쿠팡이 사과와 보상책보단 징벌적 손해배상과 과징금 등 국내·외에서 동시에 제기된 소송 리스크 대응에 무게가 실렸단 의견도 있다.
로저스 대표가 오는 17일 예정된 국회 청문회에 참석하는 건 김 의장이 이번에도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겠단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로저스 대표 선임 직후 '쿠팡Inc 소속'에 '창업주의 최측근'이라고 강조한 것은 김 의장이 직접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단 의미 아니겠냐"고 말했다. 쿠팡측도 김 의장의 청문회 출석 여부에 대해선 "결정된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김 의장의 청문회 출석을 위해 미국 쿠팡Inc에 협조 공문을 보내고, 이를 거부할 경우 동행명령 의결과 고발 조치 등 강경 대응할 방침이다.
하지만 김 의장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이런 조치는 실효성이 낮다. 현재 동행명령은 상임위원회에서 발부를 의결하면 국회 사무처 직원이 명령장을 들고 직접 대상자를 찾아가서 집행한다. 그러나 주소지에 동행명령장을 전달하지 못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고 처벌도 어렵다.
일각에선 이번 정보유출 사태 수습 결과에 따라 그동안 9조원대 로켓배송 물류망 투자로 업계 1위에 올라선 쿠팡의 독주 체제가 흔들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도 쿠팡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쿠팡 사태를 언급하면 기업에 부과하는 과태료 현실화 방안 및 공정위의 강제조사권 등의 검토를 주문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튿날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쿠팡 문제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대규모 정보유출 재발 방지를 위해 △징벌적 과징금 도입 △손해배상 실효성 강화 △대표자 책임성 제고 △기업 정보보안 관리체계 고도화 등을 추진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