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정보유출 사태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경한 대응이 양국 무역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확산한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3일 만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불이익 조치를 해 선 안된다"고 '경고'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고, 전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등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번 정보유출 사건 외에도 그동안 쿠팡에 제기된 고용, 탈세, 불공정행위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전방위 조사에 나섰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엔 지난해 11월 말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경찰 등 11개 부처 소속 수 백여명의 공무원이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이다. 미국 행정부의 항의에도 조사 규모와 방식은 특별히 바뀌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업무보고에서 쿠팡 사례를 언급하며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도록 제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제 도입 등 후속 대책을 주문했다. 올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도 "대한민국이 주권 국가란 점을 고려해 당당하고 정당하게 처리하면 된다"고 했다. 당시 미국 정관계에서 쿠팡이 과도한 조사를 받고 있단 불만이 나왔지만 '원칙론'을 강조한 것이다.
관계부처의 대응도 이런 기조와 맞물려 있다. 공정위는 쿠팡 영업정지와 징벌적 손해배상 방안을 비롯해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동일인(총수) 지정, 납품사 인기 상품 가로채기 의혹 등을 조사 중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쿠팡이 미국 기업이란 점과 무관하게 국내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한단 방침이다. 경찰은 개인정보 유출 관련 수사를 위해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를 오는 30일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쿠팡은 로비로 미국 정관계 인사를 움직여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단 의혹을 부인한다. 최근 쿠팡 투자사인 그린옥스와 알티미터가 한국 정부에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의향서를 전달한 것에 대해서도 "당사와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양국 정부 입장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며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다만 쿠팡 내부에선 '정보유출 규모를 축소·은폐했다'는 지적은 오해에서 비롯됐단 의견이 나온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쿠팡에서 유출된 정보가 최소 3000만개 이상이란 입장이다. 이 때문에 쿠팡이 지난해 12월 25일 긴급 발표한 자체 조사 자료에 "약 3000개 계정만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했다"고 표현한 건 사건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라고 의심한다.
업계에선 쿠팡 발표 자료엔 "3000명 계정만 유출됐다"는 표현이 없고, 지난해 12월 게재한 사과문에 3370만명 고객 개인정보 노출이 아닌 유출로 수정 공지한 점, 자체 보상안인 5만원 쿠폰도 사실상 모든 고객에게 제공한 점을 고려하면 정보유출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게 아닌 당시 2차 피해 우려를 불식하려는 의도였단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개인정보위 고시에 따르면 개인정보의 유출은 '해당 정보가 처리자의 관리와 통제권을 벗어나 제3자가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규정돼 있다. 이를 고려하면 정보유출자의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된 수가 아닌 당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유출 범위로 아우르는 게 합리적인 해석이다.
쿠팡 내부에선 이번 사태의 초기 대응 실패가 뼈아프단 의견도 나온다. 사건의 핵심인 정보유출 사건 외에도 산업재해 은폐나 정치권 로비 의혹, 납품업체 수수료 문제 등으로 조사범위가 확대된 것은 국내 여론과 정부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실책'에서 비롯됐단 판단이다.
이번 사태 장기화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 쿠팡 노조와 택배 사업자들도 원만하고 신속한 해결을 바란다. 쿠팡CLS와 배송 위탁 계약을 체결한 사업자 단체인 쿠팡파트너스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쿠팡 조사를 통해 잘못된 점을 개선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2만여 택배기사를 위해서 조사가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쿠팡 노조는 지난 22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쿠팡이 죽으면 알리, 테무가 산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소문이 사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쿠팡에 대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이뤄지길 촉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