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가 23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법사위에 출석해 대규모 정보유출 사태와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날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했고, 로저스 대표도 출석 전 취재진에게 별도로 언급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은 베일에 쌓여있다.
하지만 앞서 미국 하원이 로저스 대표에게 보낸 소환장엔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인 쿠팡에 대한 표적 공격을 지속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만큼 이날 회의는 한국 정부의 고강도 제재 방침에 대한 '성토장'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하원 법사위가 이달 초 해롤로 로저스 대표에 보낸 소환장은 한국 정부가 쿠팡을 비롯한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규제하고 있고 이에 대한 의회 차원의 감시와 입법 대응을 위한 쿠팡 측의 자료 제출과 증언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하원 법사위는 해롤드 로저스 대표가 위원회에 출석해 한국 정부의 표적 수사 및 차별적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언할 것을 요청했다.
소환장을 보면 이미 쿠팡은 이번 정부의 합동 조사 과정의 세부 내역과 정부 고위 인사의 발언과 제재 방침 등을 하원에 구체적으로 알린 정황이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한미 무역합의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미국 소유 기업에 대한 표적 공격을 지속해왔다"며 "공정거래위원회(KFTC)를 포함한 한국의 규제 및 집행 기관들은 쿠팡을 상대로 차별적 대우, 불공정 집행 관행, 나아가 형사 처벌 위협까지 반복적으로 가해 왔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일례로 전직 쿠팡 직원이 고객 정보를 유출한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공격적인 처벌과 막대한 과징금을 촉구한 점, 주병기 공정위원장이 쿠팡의 영업정지까지 시사한 점을 거론했다. 특히 "쿠팡이 한국 국정원과 협력해 (유출된) 데이터를 회수하고 사용자에게 보상하기로 합의했음에도 이런 징벌적 조치를 촉구했다"는 내용도 있다.
지난해 말부터 진행 중인 정부 대규모 합동조사 장기화에 대한 불만도 적혀 있다. 소환장엔 "한국 정부는 11개 기관에 걸쳐 400명의 조사관을 투입했고, 150회의 대면 회의와 200회의 인터뷰를 실시하고 1100건 이상의 서류 및 자료 제출 요구를 진행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정보유출 규모에 대해서도 미 하원 법사위는 쿠팡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 10일 합동조사단은 쿠팡 고객 개인정보가 3367만건 유출됐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지만, 소환장엔 "정보 유출이 약 3000명의 고객에 대한 한정적이고 비민감한 정보에 그쳤으며 이미 모두 회수됐다"는 내용이 적혔다. 이는 쿠팡이 지난해 12월25일 자체 중간 조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미 하원은 공정위가 유럽연합(EU) 모델에 기반한 디지털시장법(DMA), 즉 온라인플랫폼 규제 입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선 "미국 기업에 부담스러운 규제 의무, 막대한 벌금, 차별적 집행을 허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시아정책연구소(NBR)의 분석 결과를 인용해 "공정위가 중소기업과 중국 경쟁사를 예외로 두고 미국 기업을 표적으로 규제를 하려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번 조사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등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법 301조 등 대체 수단을 이용해 새 관세 부과를 시도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 정부가 해외 시장에서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행위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관세 등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쿠팡 사태를 계기로 한국 정부의 입법 규제를 차단하는 목적의 새로운 보호 입법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쿠팡 미국 본사인 쿠팡Inc는 이날 로버트 포터 글로벌 대외협력 최고 책임자(Chief Global Affairs Officer) 명의로 공식 입장문을 내고 "미 하원의 의견 청취로까지 이어진 한국에서의 상황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건설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좀 더 포괄적으로는 미국과 대한민국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를 통해 양국 경제 관계의 개선, 안보 동맹 강화, 무역과 투자를 증진하여 양국의 이익에 동시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이날 쿠팡Inc가 로저스 임시대표가 아닌 한미관계 전문가인 포터가 공식 입장을 낸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하버드대를 나와 트럼프 1기 정부 백악관 선임비서관으로 2017년 백악관 입성 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과 핵심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한국 통상 이슈와 관련,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함께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 시도를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포터가 미국 청문회 직후 공식 입장을 내고 수습 방안을 찾겠다는 것은 그동안 무성한 로비 의혹 등을 해소하고 투명하게 소통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