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냥' 있는 건 없다…4년간의 집요한 종탑 기행[서평]

이병권 기자
2026.04.01 17:14

[신간] 울림을 보다

사진집 '울림을 보다' /사진제공=21세기북스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풍경은 울린다. 윤종효 작가의 사진집 '울림을 보다'를 넘기다 보면 이런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같은 공감각을 마주하게 된다. 4년간 정성스럽게 기록된 종탑들은 오랜 시간 겹겹이 쌓인 기억을 불러내고 그 시절을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시간의 흐름을 상상하게 만든다.

사진집은 단순하다. 낮고 투박하고 낡은 종탑들이 담겼다. 화려한 장면이나 극적인 연출은 없지만 몇장을 넘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긴다. 종탑이라는 구조물은 왜 생겼고 언제부터 있었으며 지금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그 질문은 어느 순간 '이대로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작은 불안으로 이어진다.

종탑은 한때 마을의 시간을 알리던 구조물이었다. 종이 울리면 사람들이 움직였고 하루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능은 점점 희미해졌고 종탑은 풍경의 일부로 밀려났다. 그래서인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이미 지나간 시간의 잔향을 마주하는 느낌이 겹친다.

이 책이 더 흥미로운 이유는 조용한 사진들이 결코 '조용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 작가는 전국 교회 수천 곳에 직접 전화를 돌려서 종탑의 유무를 확인해야 했고 신문 광고를 통해 제보를 모으며 촬영 대상을 추렸다. 이후 하나씩 현장을 찾아가 집요하게 기록했다.

나뭇잎이 떨어져야 종탑의 구조가 온전히 드러난다는 이유로 촬영 시기는 늦가을부터 겨울로 제한했다. 빛이 정제되는 새벽과 해 질 무렵만을 고집하기도 했다.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 차 안에 머물며 촬영 순간을 기다리는 일도 반복됐다. 사진은 고요하지만 그 뒤에는 꽤 집요하고 치열한 시간이 쌓인 셈이다.

그렇게 탄생한 '울림을 보다'는 먼 훗날 가치 있는 역사적 기록물이 될지도 모른다. 종탑이 하나둘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 작가가 종탑이 있던 자리를 다시 찾았을 때 이미 사라져버린 현실을 마주하기도 했다. 책에 담긴 순간이 더 이상 반복될 수 없는 그 동네의 마지막 풍경일지도 모른다.

윤 작가의 특수한 이력도 작업에 녹아들었다. 사진 작가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브랜드를 거쳐 현재 씰리코리아를 이끄는 경영인이다. 감성적인 접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정한 거리와 구도로 대상을 반복적으로 기록하는 집요한 태도는 그의 경영 방식과 닮아있다. 우연에 기대 예쁜 장면을 바라는 사진과 다른 이유다.

'울림을 보다'는 사진을 먼저 보여주고 해석은 독자에게 맡긴다. 어떤 사진은 스쳐 지나가고 어떤 사진은 유독 오래 남는다.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특이한 구도의 사진들도 몇 점 등장하지만 왜 그렇게 찍었는지에 대한 해설은 없다. 역설적으로 그 점이 이 책이 종탑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울림을 보다'는 크고 특별한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든다. 그 자리에 그냥 있는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한 시대의 시간과 기억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울림은 생각보다 오래 머문다.

◇ 울림을 보다/윤종효 지음/21세기북스/2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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