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부산 강서구 성원기업 공장동 한편에 길이 약 5m 길이의 은색 원통이 놓여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금속 통이지만 수소 10㎏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 용기로 수소 승용차 두 대를 넉넉하게 충전할 수 있다. 34년간 조선·해양산업을 영위한 성원기업이 체질 개선을 선언하며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고체수소 저장 시스템'이다.
고체수소는 금속에 수소를 저장하는 기술이다. 원통 속 수많은 미세한 금속 입자가 스펀지처럼 수소를 흡수해 품고 있다가 필요할 때 열을 가하면 수소를 방출한다. 현재는 수소를 초고압으로 압축하거나 영하 253도의 액체 상태로 냉각해야 하는 고압·액화수소 방식 비중이 높지만, 고체수소는 저압·상온에서 차세대 저장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성원기업은 매출 5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에 조선·해양플랜트 기자재 공급하며 안정적으로 성장했으나 새로운 도약을 위해 2021년 수소에너지 분야에 뛰어들었다. 기존 강점인 용접·합금 기술에 한국생산기술연구원으로부터 이전받은 원천기술을 접목해 고체수소 개발에 나섰다.
고체수소 저장 기술은 국내외 연구가 활발하다. 다만 초기 단계여서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 정종태 성원기업 대표는 "수소경제가 본격화하면 수소를 생산하는 것만큼 저장 기술이 중요해진다"며 "많은 양의 수소를 필요한 시점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 수소 에너지 시장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원기업이 가장 기대하는 시장은 발전소 분야다. 한국동서발전은 2030년 하루 약 3.5톤의 수소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 차질에 대비해 최소 10~15일치 물량을 비축해야 하는 만큼 발전소 한 곳당 약 50톤 규모의 저장 능력이 필요하다. 정 대표는 "이 정도 물량을 기존 고압이나 액화 방식으로 저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고체수소의 대용량 경쟁력이 가장 크게 발휘될 분야"라고 했다.
성원기업은 저압·상온에서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점도 고체수소의 강점으로 꼽았다. 저장시설 규모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는 "고압·액화 방식으로 수소 50톤을 저장하려면 약 300평 규모의 시설이 필요하지만 고체수소론 100평이면 된다"며 "저장 용량이 커질수록 공간 활용성과 안전성 측면의 장점도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상용화를 위한 준비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성원기업은 10㎏급 고체수소 저장 시스템 개발을 완료했고 40㎏급 시스템 실증도 마쳤다. 약 40억원 규모의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를 수행하며 자체 열관리 기술을 확보했다. 열관리는 고체수소가 수소를 흡·방출할 때의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다.
내년에 50㎏급 시스템 개발에 착수하고 향후 100㎏급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성원기업은 50㎏급 시스템 상용화가 가능한 2028년부터 본격적인 수소사업 매출이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기대한다. 정 대표는 "발전소뿐만 아니라 HESS(수소기반 에너지저장체계), 운송 모빌리티, 수소추진 선박 등에서 이미 관심을 갖고 있고 레퍼런스만 확보하면 된다"고 자신했다.
다만 제품 상용화를 위한 제도 정비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 수소 관련 인증·안전기준은 아직 고압·액화수소를 중심으로 마련돼 있어서다. 정 대표는 "기술은 준비됐지만 제도가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며 "신기술에 맞는 인증 체계와 실증 기회가 확대돼야 관련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