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미 지구가 둥글고 태양 주변을 공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지구의 둘레도 실제 값에서 4퍼센트 오차로 추정했고 세상 만물이 동일한 미세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입자물리학의 원형과도 같은 주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만들어진 책에는 세상이 평평한 직사각형이며 북쪽 끝에 있는 원뿔 모양의 산 주위를 해와 달이 맴돈다고 쓰여 있었다. 그 사이에 인류지성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인간은 스스로의 경험을 넘어 타인을 통한 대리학습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자연과 우주의 섭리에 대해서는 종교지도자나 과학자, 삶의 이유에 대해서는 철학자, 신체의 질병에 대해서는 의사, 사회에 대해서는 정치가에게 의존하는 식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지식인의 의견이 분화되고 엇갈리면 이중 더 합리적이고 진실에 가까운 것을 선택하면 그만이나 문제는 무엇이 사실에 더 가까운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 발생한다. 반물질(anti-matter)의 존재 여부나 현대경제시스템의 복잡성을 생각해보라. 학문이 고도로 발달할수록 훈련된 학자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특정 지식의 진위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사람들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초적 공포를 느낀다. 특히 그러한 미지의 대상이 자신과 이해관계를 가질 때 공포는 종종 혐오와 적대감으로 변모한다.
소위 ‘지식인’이라 불리는 이들도 진실을 탐구하기보다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는 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이때 누군가 나타나 ‘좋은 지식인’과 ‘유사(pseudo)지식인’을 구분하고 다양한 의견을 하나의 ‘올바른(?)’ 의견으로 정리하면 다시 세상은 예전의 질서를 회복할 것처럼 보인다.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태어난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확산된 실천적 지식인과 그렇지 않은 비생산적 지식인의 구분은 결국 파시즘의 태동으로 이어졌고 공산주의권 소련과 중국에서도 반지성주의적 테러로 현실화되었다. 심지어 양자역학도 사회주의의 결정론적 철학에 반하는 확률론에 기반한다는 이유로 소련에서는 배척당했다. 반지성주의는 질문을 억압하고 근거를 찾는 노력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미 옳고 그름이 구분된 상태에서 그 근거를 세심하게 따지는 사람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한창이다. 교과서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의논하고 해결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국내 역사학자의 90%가 좌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과 이에 편승하는 일부 학자부터 역사교과서와 더불어 다른 분야도 좌편향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해당 분야 전문가 대부분을 논의에서 배제한 채로 일반 국민을 상대로 역사문제를 대신 판단하라고 여론전을 펴고 있다.
정작 두려워해야 할 일은 역사교과서의 편향 여부가 아니라 이러한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아이들이 배우는 것 아닐까. 학자들이 갈고 닦은 논리와 근거가 인정받지 못하고 폄하되며 무시되는 사회. 사실관계에 대한 고려는 없이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인들. 합리적 토론과 대화는 실종된 채로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과 비방만 난무하는 미디어. 과연 이런 모습을 보고자란 다음 세대가 지식을, 진리를, 거짓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