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 의사소통과 공존

정태연 기자
2015.11.05 02:12

의사소통을 인간의 전유물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는 나름의 신호를 통해 소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물학자 안드레아스 바그너에 따르면 초식곤충은 알을 낳거나 유충이 자랄 숙주식물을 선택할 때 지나친 경쟁을 피하기 위해 서로 소통한다. 일부 곤충은 배에서 물질을 분비해 자신이 알을 낳은 장소를 표시하고 다른 곤충은 이 분비물의 냄새를 맡고 그 식물에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은 그 숙주식물도 한다. 그 식물은 유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화학신호를 발산한다. 이러한 신호는 초식곤충의 천적을 불러들여 그들로 하여금 그 곤충이나 유충을 잡아먹도록 한다. 병을 유발하기 위해 박테리아도 의사소통을 통해 군집을 형성한다. 박테리아 플라크는 칫솔에 대항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를 결합하는 접착제를 분비한다. 접착제 분비는 혼자 있을 때는 일어나지 않을 뿐더러 분비 전에 그들은 주변에 얼마나 많은 동료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소통한다.

이러한 소통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몇 가지 기본적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가 주고받는 신호를 동일하게 해석하고 이해한다.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한 곤충이 분비한 물질을 다른 곤충도 그렇게 이해함으로써 그 곤충은 자신이 의도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또한 신호를 주고받는 공동의 목표가 있음으로써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박테리아 플라크들 간의 소통은 칫솔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공유된 목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간 역시 집단 속에서 의사소통하기 위해 여러 신호를 발달시켜왔다. 그러한 신호에는 크게 말과 몸(혹은 행동)이 있다. 이 두 신호에 의한 의사소통 역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앞의 두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동일한 의미나 의도를 가진 것으로 해석할 때 우리는 그러한 신호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신호가 관련된 사람 전체를 위한 것일 때 그것은 의사소통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우리가 긍정적 내용을 소통할 때는 말이나 행동 모두 유용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행동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자신의 연모하는 마음을 사랑한다는 말로 전할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꽃다발을 선사하는 것이 그 마음을 더 잘 표현할 수도 있다. 반대로 부정적인 내용을 전달하고자 할 때는 행동보다는 말이 대부분 더 건설적이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폭력으로 표현하기보다 조리 있는 말로 전하는 것이 문제해결에 더 큰 도움이 되기 쉽다.

부정적 내용을 말로 소통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몸으로 하는 소통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회가 주로 몸에 기반해서 소통한다는 것은 말로 하는 소통이 부실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동시에 말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회는 물리적 힘에 기반해서 소통한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당연히 그런 사회에서 공권력이나 집회와 같은 물리적 힘이 빈번히 등장한다.

의사소통에 해당하는 영어 커뮤니케이션은 원래 역할을 함께 분담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때 역할을 분담하기 위해서는 그런 역할이 소속된 사회에 대한 공유된 인식이 있어야 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그 역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의사소통은 단순히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존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공존이라는 목적 없이 이루어지는 말이나 행동의 교환은 소통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입장을 통보하거나 강요하고 협박하는 일방적 행위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자신들만이 말이라는 상징을 이용해서 소통한다는 이유로 나머지 생명체들을 폄하하곤 한다. 과연 그럴 만한가? 몸으로 소통하면서 균형 있게 살아가는 여타의 생명체들보다 과연 우리 사회는 더 잘 소통하는지 자문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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