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과 중국 분쟁의 핵심 쟁점은 무역적자가 아니다. 기술을 중심으로 한 지식재산이 문제였다. 양국의 기술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인데 중국이 디지털 기반의 신인프라 투자를 통해 기술자립에 나서겠다고 선언하자 미국은 중국에 대한 기술이전 제한으로 응수했다. 둘의 목표가 상반된 만큼 갈등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3~4년의 경험도 갈등 격화 쪽에 힘을 실어준다. 중국과 미국이 첨단기술제품을 놓고 2년 넘게 다투면서 양국 해당 제품의 수출입 규모가 줄었다. 2018년 1분기에는 미국의 첨단기술제품 수출입에서 중국이 24% 정도를 차지했지만 올 1분기엔 그 비율이 14%로 축소됐다.
미국은 기술갈등에서 한 보 더 나가 자국 중심의 경제블록을 만들려고 한다. ‘경제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가 그것인데, 중국에 있는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거나 인도·베트남 등 미국이 믿을 수 있는 국가로 이전을 유도해 중국에 의존하는 세계 공급망을 다시 짠다는 계획이다. 해당 조치의 첫 번째 성과가 반도체에서 나왔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업체 대만 TSMC가 120억달러를 들여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미중 양국은 무역·과학기술 등에서 충돌했다. 미국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제재를 계속했고 차이나모바일 등 중국 통신기업의 미국 내 영업을 제한했다. 5G(5세대 이동통신)·반도체·양자컴퓨터·인공지능 등 첨단분야에서 중국과 기술교류를 제한해 둘 사이에 격차를 유지하려 한 것이다.
이런 갈등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 연장을 계기로 표면화했다. 2019년 5월 미국은 화웨이를 블랙리스트(entity list)에 올리고 미국 반도체 사용 제한 조치를 취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화웨이가 제재의 빈틈을 이용해 반도체 제품 라인업을 다시 구축하고 애국 마케팅을 통해 매출을 오히려 19% 늘렸기 때문이다. 이에 화가 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업체의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년 5월까지 1년 연장했다. 미국 기술을 활용하는 외국 기업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팔려면 사전에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규정도 만들겠다고 얘기했다. 중국이 목표로 한 화웨이를 통한 반도체 개발을 최대한 막는다는 심산이다.
이런 미국의 공격에 중국 언론들은 즉각적인 반격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 업체에 대한 제재와 조사를 시행하고 한국, 유럽, 일본 등과 협력해 반도체 개발에 나서자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관영언론 논조가 정치권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도 악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이런 분노는 중국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반도체를 생산하는 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반도체는 설계-생산-테스트를 포함한 후공정으로 나뉜다. 중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은 이미 상당 수준에 올라왔다. 반면 생산은 가장 큰 파운드리업체 SMIC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5%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하다. 결국 생산공정을 얼마나 빨리 효율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따라 반도체 자체 개발의 성패가 결정되는데 중국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지원에 나섰다.
미중 양국의 기술갈등은 세계 경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현재 세계의 패권을 쥔 나라지만 중국은 세계 110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어서 양쪽 모두 만만치 않다. 어느 나라도 미국이나 중국 한쪽에 서기 힘들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에 서서 국익에 손해를 보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국익은 이념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