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025년도 예산안을 처리한 지난 10일. 회의를 진행하던 우원식 국회의장이 잠시 머뭇거렸다. 우 의장은 "교섭단체 대표위원님, 정책위의장이 나와서 상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안건 처리 중 진행을 잠시 멈추는 것은 이례적인 장면이다. 통상 본회의는 원내 교섭단체 사이 협의를 거친 안건만 올리기 때문에 의원들의 찬반 토론 없이는 안건처리를 멈추는 일은 거의 없다.
우 의장이 이날 안건처리를 멈춘 것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 비용 47.5%를 국비로 지원한다'는 조항의 효력을 3년간 연장하는 것이 골자다. 고교 무상교육 국비 지원 조항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효력이 사라지는 일몰 규정에 따라 올해 말까지만 적용되고 사라질 예정이었다.
문제는 다음 안건인 2025년도 예산안이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낸 677조4000억원 규모 예산안에서 4조1000억원을 감액한 수정안을 본회의로 보냈다. 정부·여당은 예산 증액을 놓고 민주당과 막판 협상을 벌였으나 예비비와 지역사랑상품권 등 주요 항목에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감액 심사만 반영한 예산안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도 무상교육 예산은 교육부 사업 예산으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전체 예산안의 증액 심사를 하지 않았던 탓에 무상교육 예산을 반영할 길이 없다. 결국 고교 무상교육의 국비 지원 근거를 만들어놓고 정작 예산은 없는 모순된 결과를 만들게 된다.
사용처를 지정해놓은 '목적 예비비' 사용 목적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 시 고교 무상교육 사업 소요경비를 추가한다'는 조항도 넣었지만 본 예산이 아닌 한 '꼼수'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지난해 고교 무상교육 사업비는 9500억원 수준인데 전체 예비비는 정부원안 4조8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반토막났다. 안 그래도 절반으로 줄어든 예비비의 약 40%를 사업 1개에 쏟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결국 양당 합의 끝에, 정확히는 민주당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의 당일 처리 의사를 내려놓으면서 우 의장은 "안건 처리를 보류한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올해 9월 2025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이후 민주당은 "윤석열정부가 고교 무상교욱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법적 근거가 없는 예산을 짤 수 없고 당초 지원 조항 일몰 후 계획에 따라 고교 무상교육 예산은 앞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활용하게 돼 있었다. 그럼에도 야당은 무상교육 예산, 정확히는 국비 예산이 0원이라는 점만 강조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정부 예산안 확정 전 미리 개정했더라면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고교 무상교육에 대한 국비 지원 예산도 이번에 처리된 내년도 예산안에 담겼을 것이다.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예산을 만들지 못 하도록 하고 감액 권한은 국회에, 증액 동의권은 정부에 나눠준 헌법의 취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국회가 이런 아마추어 같은 본회의 해프닝을 국민 앞에 연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