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쉼도 일도 즐거운 명절을 위하여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2025.01.23 02:05
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쉬는 날 뭐 할 거야." 예전부터 이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쉰다는 것은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인데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논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아무 일도 안 하고 놀 거야"라고 말하고는 일을 하듯이, 때로는 일을 할 때보다 더 격하게 논다. 산과 바다로, 박물관과 백화점으로, 놀이동산으로 향한다. 몸과 마음을 소진해가면서까지 노는 모습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를 실감한다. 어쩌면 우리 말의 '쉰다' 또는 '논다'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일지 모르겠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사회시스템도 여기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주말이면 더 많은 가게가 문을 열고 평일보다 더 많은 볼거리, 즐길거리가 펼쳐진다. 심지어 긴 연휴 앞뒤로는 열차나 버스도 증편운행한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면 우리만큼 주말에, 그리고 심야에 활기가 넘치는 나라도 없는 것 같다. 20년 전쯤 홀로 미국에서 지낼 때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미국인 동료들은 집에 갇혀서 패스트푸드 체인이나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나를 걱정해줬다. 심지어 어떤 동료는 근처 성당을 알려주며 여기라도 가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그들의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돼 햄버거와 피자로 연명해야 했다.

옛날 정월 설은 차례를 드리고 세배를 다니며 차분히 새해를 축원하는 날이었다. 정월 초하루에 읊은(제목에 元日 또는 元旦이 들어가는) 시를 보면 대부분 지난 한 해를 반성하거나 세월의 흐름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본격적으로 한 해의 시작을 축하하며 여럿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놀이를 즐기는 건 보름쯤 지난 뒤였다. 정월의 세시풍속으로 알려진 볏가릿대 세우기, 쥐불놀이, 줄다리기 등은 모두 정월대보름의 놀이다. 이런 전통이 남아서인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설 연휴는 기다림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많은 사람이 차례를 지내기 위해 각자의 고향에 내려가 도심은 텅 비고 영화관을 찾는 손님도 많지 않았다. 설 연휴는 말 그대로 모두에게 '쉼'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설이 진정 '노는' 날로 변했다. 예전에는 텅 비었던 설날 도심거리가 이제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하지만 이 노는 날이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노는 사람만큼이나 쉬지 못하는 사람도 늘었다.

서울시는 올해 설 당일과 이튿날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연장운행한다. 이뿐인가. 한 해의 시작, 그간 고마웠던 분들을 위해 보내는 선물로, 또는 제수용품 등 설 기간을 위한 여러 물품으로 우체국은 북새통을 이루고 택배차량도 쉴 새 없이 오간다. 편의점 택배는 연휴기간에도 정상운영한다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설에 택배물량이 평시보다 9%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설 연휴를 특별관리기간으로 지정하고 택배회사들과 협력해 5200명의 추가 인력을 투입함으로써 원활한 배송과 종사자들의 휴식을 보장하는 한편 공공기관 발송물품을 사전 주문하게 해 물량이 분산될 수 있도록 했다.

며칠 전 박물관 전시 마감시간에 특별전시실을 둘러봤다. 관람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지만 많은 관람객이 전시품을 들여다보며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을 운영하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직원에게 "이제 서서히 마쳐야 한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묻자 "너무 아쉬워하셔서 저희도 안타까워 일단은 기다려드려요"라고 했다. 관람객이 모두 가고 현장요원은 전시장을 정리한 뒤에야 퇴근했다. 자신의 퇴근시간을 늦춰가며 관람객에게 마음을 베푸는 모습이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올해는 임시공휴일이 제정되면서 여느 해보다 긴 설 연휴가 주어졌다. 누군가의 쉼은 누군가의 일이다. 쉬는 날이 많아진 만큼 일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긴 연휴 동안 쉬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도 서로를 배려하며 명절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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