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시각과 청각장애를 갖고 계셨고 고관절이 골절돼 8년 동안 요양병원에 누워 있다가 가셨다. 보지도 듣지도 먹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할머니를 보면서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 반, 그래도 사셨으면 하는 마음 반이었다.
지난해 12월19일 상태가 많이 악화됐으니 준비하라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모임과 약속을 취소한 후 휴대폰 옆을 지키면서 밤에는 못 자고 낮에 한두 시간씩 자다 깨다 하는 걸 연초까지 반복했다. 금방 돌아가실 것 같더니 또 바이탈 수치가 좋아져서 그냥 일상을 살자며 새해 첫 저녁 외식을 한 날 귀가해서 외투를 벗자마자 전화가 왔다. 다시 외투를 입고 30분 거리인 요양병원에 갔더니 커튼이 쳐진 3층 중환자실 8인 병상에 할머니는 평온하게 누워 계셨다. 새근새근 자는 듯했는데 가만 보니 호흡기와 콧줄, 주삿바늘이 다 떼어져 있고 바이탈기기엔 아무런 수치도 표시되지 않았다.
2025년 1월14일 23시17분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최옥례씨가 마침내 몸을 벗고 자유로워지셨다. 병원비를 결제하고 사망진단서를 떼고 장례식장과 화장장을 구하는데 독감으로 돌아가시는 분이 많아 좀처럼 빈자리가 없었다. 장례에 관한 사무적인 절차들을 처리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못했는데 빈소와 장례일정이 다 정해지고 나자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해 골똘해졌다. 죽음은 그저 '몸의 사라짐'이 아닐까. 죽은 자들은 몸이 없어 보이지 않을 뿐 산 사람이 결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계속 존재하는 게 아닐까.
온라인 알고리즘이 무섭다. 그런 생각을 했더니 유튜브에 짧은 추천영상이 바로 떴다. '죽음학'으로 잘 알려진 서울대 의대 정현채 교수의 증언이다. 오래 알고 지낸 심장내과 교수가 미국으로 단기연수를 갔는데 새벽에 누가 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서울에서 그가 진료한 환자가 문 앞에 서서는 "이제는 다 나아서 아프지 않아요. 누가 기다리기 때문에 가봐야 해요"라고 하고는 떠났다고 한다. 한 달 뒤 귀국해서 의무기록을 확인해보니 그 환자는 새벽에 만난 그 시각 한국에서 사망했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영상에 달린 댓글들은 비슷한 체험을 공유했고 그중에는 뭉클한 내용도 있었다.
"아내가 암 투병 끝에 사망했습니다. 장례 마치고 아이들은 어머니 집에 맡겨두고 늦은 밤 텅 빈 집에 와 침대에 누워 잠들었는데 누군가 옆에 눕는 듯한 기척이 나더군요. 잠결에 '당신 왔어?' 했는데 무언가가 머리를 쓰다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 딸 장례 치르고 밤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딸이 투병할 때 병원에 나던 냄새가 방안에 확 퍼지는 거 보고 딸이 왔구나 느끼고 허공을 안은 적이 있어요." "임신 당시 입덧이 심해 입원 직전까지 갔는데 돌아가신 엄마가 꿈에 나와 제 손을 잡고는 어느 잔칫집 뷔페에 데리고 가 배 터지도록 음식을 먹여주셨어요. 그 꿈을 꾸고 나서 거짓말처럼 입덧이 사라졌어요. 엄마가 저를 살리러 왔다 가신 걸로 생각해요."
화장장에서 신비한 일을 겪었다. 15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어느 고인께서 할머니와 같은 시간 바로 옆 화로에서 하늘로 오르신 것이다. 흔치 않은 이름이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두 이름이 나란히 표기된 전광판을 보면서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닌 것 같은 우연에 "할아버지께서 마중 나왔다"며 가족들이 위로를 받았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할아버지 옆에 합장해드리고 이천호국원 하늘을 올려다보니 참 푸르고 맑았다. 할머니는 이제 거추장스러운 몸을 벗었으니 내가 불이라고 생각하면 불의 형상으로, 새라고 생각하면 새의 모습으로, 비라고 생각하면 비의 시원함으로, 바람이라고 생각하면 이마 위 머리칼을 넘기는 바람으로 오실 것이다. 죽음의 외적현상일 뿐인 부재와 소멸을 슬퍼하지 말고 모든 이별에 의연하자고 마음먹는다. 하나의 몸이 사라졌을 뿐 사랑은 만상(萬象)으로 함께 있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