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3+α 위기'의 본질

박재범 경제부장
2025.02.12 04:25

# 암울한 진단으로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희망적이지 않다. 정치적 문제 때문은 아니다. 비상 계엄‧탄핵 등 일련의 사태에 감춰졌을 뿐 위기는 심각하게 존재해왔다.

모르는 이는 없다. 다 아는 3대 위기다. 우선 구조화된 저성장이다. 연 2% 성장조차 어렵다. 소비는 최악을 갱신한다. 3년 연속 소비가 줄었다. 성장이 멈췄고 그나마 돈은 부동산에 묶여 있다 보니 쓸 돈이 없다. 자영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반도체(삼성‧SK), 자동차(현대‧기아차), 방산(한화) 등이 돌아가며 수출 숫자를 간신히 만들 뿐이다. 재정은 자기 몸을 건전하게 챙기느라 성장에 관심이 없다.

차세대 성장 동력이라도 있으면 작은 희망을 품어보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두 번째 위기다. 인터넷 시대엔 흐름에 올라탔고, 스마트폰 시대엔 한발 늦었어도 곧 따라붙었던 대한민국이다. 산업혁명을 뛰어넘는, AI 혁명의 시대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트럼프 시대는 2개의 위기를 증폭시킨다. 4년이 아닌 그 이상, 세계 질서를 주도할 트럼프 시대를 우린, 너무 편하게 마주한다. 둔감하다. 말의 성찬(긴밀 협의‧면밀 검토‧총력 대응)만 있을 뿐 전략을 찾아보기 힘들다.

# '3대 위기'에 더한 '+α(플러스 알파)'는 비상 계엄‧탄핵이 만들어 낸 공백이다. '공백'은 위기조차 빨아들인다. 정치‧사회적 불확실성으로 '3+α 위기'를 감춘다. 정치와 사법의 과잉이 공백을 채우며 위기의 원인을 희석시킨다. 혐오와 비난은 합리적 진단과 분석을 지운다. 핑계거리로 이만한 게 없다.

위기의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대외 여건, 전략 부재, 정치적 불안정, 양극화 …. 통제 가능한 요인부터 통제할 수 없는 변수까지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조차 우린 알고 있다. 실체적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대한민국 위기의 본질은 '무능'이다. 고착화된 저성장을 외면한 것은 실력이 없어서다. AI 시대를 맞을 준비를 못한 것, 대응할 전략을 만들지 못한 것 등도 역량의 문제다.

법과 제도, 정책은 기가 막힐 정도로 늦다. 입법 독주와 정치권의 무능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국회 탓'에 맛들인 정부의 실력 역시 예전 같지 않다.

천조국이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워 정책을 쏟아낸 지난 10년 동안 우리만의 산업정책을 본 기억이 없다. 지난 2011년 처음 발의된 서비스산업 발전법(서발법)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이마저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인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 과거에도 우린 숱한 위기를 겪었고 고비를 넘겼다. 새로움을 만들고 혁신을 창조했다. 반도체, 갤럭시 그리고 오징어게임은 진취적‧탐험적 시도와 노력의 결과였다. 정부, 국회, 기업, 가계 등 주체들은 각자의 위치에 맞춰 제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그 실력이 갑자기 사라진 걸까. 제 역할을 버리고 다른 길을 택한 것은 아닐까. '금모으기'에 앞장섰던 이들은 '금사재기'를 보여준다. '갭 투자' '코인 광풍'을 겪은 국민들은 실력을 다르게 발휘한다.

기업은 혹여 특혜 논란에 휩싸일까 정책적‧제도적 뒷받침을 꺼린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은 시장 경쟁에서만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정부 정책과 규제로 그 위치가 결정되는데 말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온갖 무기를 기업들에게 쥐어주는데 우리 기업은 맨 몸으로 나선다. 상대적으로 무능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최소한의 수준인 반도체 특별법은 주52시간 예외 문제에 걸려 있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무능이다. 추가경정예산은 정부와 국회가 서로 협의하라며 미룬다. 제 역할을 방기한 채 남 탓만 하는 무능편의주의다.

전세계는 '미국우선주의' 기조에 맞춰 팀을 만들어 자국 우선주의 전략 전술을 짠다. 반면 우린 여야, 친기업‧친노조 등 구시대 문법에 빠져 팀조차 만들지 못한 채 허우적댄다.

찬반을 떠나 현재 글로벌 기조는 '자국우선주의'다. 자국민 보호를 위해 철저히 아부하고 굴욕을 기꺼이 감내한다. 우린 '대한민국 우선주의'를 외칠 준비가 돼 있을까.

"위기는 최악의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대응하지 않을 때 깊어진다."(존 F.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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