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환경이 바뀌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규제·통상압력에 망사용료 문제가 포함될 것 같다. 우리야 당연히 (망사용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국제통상 관례 등 제반 사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 25'를 앞두고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 한 말이다. 구글 등 글로벌 콘텐츠 공룡기업들이 국내 인터넷망에 무임승차하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법안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됐다가 무산된 후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지만 입법화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앞서 올해 MWC를 전후해 국내 통신업계엔 미국계 빅테크(대형 IT기업)를 망사용료 논의 테이블로 끌고나올 수 있을 것이란 근거 없는 기대감이 있었다. 브랜든 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 그간 미국 내에서 빅테크 규제의 필요성을 주창한 인물이었다는 점이 그나마 근거라면 근거였다. 미국 내에서도 빅테크로 하여금 낙후지역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을 위한 기금에 출연토록 해야 한다는 이슈가 대두한 만큼 다른 나라들이 미국 콘텐츠 공룡기업들에 인터넷 망사용료를 부과하려는 데도 우호적이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이 같은 기대감은 MWC 현장에서 무참히 깨졌다. 카 위원장은 MWC 기조연설에서 망사용료 문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유럽연합(EU)의 DSA(디지털서비스법)가 자국 빅테크가 누릴 '표현의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DSA는 DMA(디지털시장법)와 함께 EU의 대표적 디지털 시장 관련 규제로 꼽힌다. DMA가 대형 플랫폼사업자의 공정경쟁 의무 등 B2B(기업간 거래) 관련 내용을 주로 규율한다면 DSA는 플랫폼 내에서 유통되는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고 차단할 의무를 플랫폼 사업자에 규율하는 법이다. 카 위원장은 "유럽에서 미국 기술기업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고 보호주의적 규제를 가하려 하면 트럼프정부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미국 기업의 이익을 방어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구글은 유튜브 등을 통해 국내 인터넷망에서 차지하는 트래픽(인터넷망에서 데이터 송수신량) 비중이 30%를 넘는다. 국내 ISP(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계에선 구글이 연간 무임승차하는 망사용료가 최소 2000억원을 넘는다고 추정한다. 문제는 구글이 미국·프랑스 등에선 현지 통신사에 망사용료를 내면서 유독 한국에선 ISP와의 망사용료 협상 테이블에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정부의 보호주의 기조가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한국 주력 산업에 전방위에 걸쳐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 망사용료 문제가 미국에 더 센 보복규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대 국회 때 입법화하지 못한 망무임승차방지법을 이제 다시 추진하기엔 상황이 매우 불리해졌다는 지적이다. 여야의 정쟁으로 망무임승차방지법이 무산되면서 연간 2000억원대에 이르는, 꼭 받아야 할 수익을 되찾을 길도 사라져버린 셈이다. 만시지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