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통계의 함정

최성진 스타트업성장연구소 대표
2025.03.25 02:05
최성진 스타트업성장연구소 대표

스타트업이 체감하는 투자환경은 여전히 혹한기인데 벤처투자금액은 왜 증가했을까. 지난달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4년 벤처투자 동향을 분석하는 글을 쓰면서 든 의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벤처투자가 11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9.5% 증가한 것은 '팩트'였기에 초기투자 및 펀드결성 감소, 민간부문 축소와 AI 투자부족 등 세부지표상의 문제점을 들어 아직 투자 혹한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통계와 현장의 괴리감은 떨칠 수 없었는데 최근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이달에 발간한 '2024 한국의 CVC들: 현황과 투자 활성화 방안'을 보면 정부통계와 민간통계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집계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가 발표하는 벤처투자 통계는 국내 스타트업 투자실적만이 아니라 상장사 및 해외투자를 포함해 투자회사(VC)의 전체 투자실적을 합한 금액이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가 활용한 민간통계인 더브이씨 자료와 비교하면 국내 벤처투자가 가장 활발했던 2021년엔 정부와 민간집계가 17조원과 17조9000억원으로 큰 차이가 없으나 지난해엔 11조9000억원과 7조6000억원으로 4조원 이상 차이난다.

민간의 통계가 더 정확하다고 단언하지는 못해도 이 정도의 큰 차이가 발생할 리 없는데 VC들의 상장사 및 해외투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해외 리서치업체들의 통계도 지난해 아시아 시장의 벤처투자는 급감했고 한국도 4분기에 증가했으나 전체적으로 감소 추세인 것을 보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감소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부통계에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나 오해나 착시가 발생할 여지는 충분하다. 정부는 "한국의 벤처투자 시장은 글로벌 대비 회복세가 뚜렷하다"고 하지만 이는 VC 관점에선 맞을지라도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의 관점은 아니다. 4조원의 차이가 상장사 및 해외투자에서 발생한 것이 맞다면 국내투자는 오히려 급감했다고 보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VC들의 해외투자 증가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시장과 정책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CVC(기업형 벤처캐피탈)에 대한 통계방식도 마찬가지로 차이가 있다. 먼저 성장한 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CVC는 인수·합병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투자기업의 혁신에도 도움이 된다. 재무적 투자보다 전략적 투자 성향이 강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중요성을 인정받는 정책적 진흥대상이다.

그런데 정부의 통계는 VC의 최대주주가 비금융 일반기업인 경우 CVC로 분류하지만 민간의 기준은 다르다. 위 보고서는 독립적인 CVC뿐만 아니라 VC를 별도로 설립하지 않고 직접투자하는 사내 CVC를 포함했다. 미국벤처캐피탈협회(NVCA) 역시 기업의 직접투자까지 CVC로 분류한다. 그 결과 중기부가 발표한 2022년 CVC 투자금액은 2조7000억원으로 전체 벤처투자 대비 22%였으나 위 보고서의 2022년 통계는 4조5000억원에 31%로 나타났다.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책이 다를 수밖에 없을 정도의 큰 차이다.

정부는 CVC 비중을 "2027년까지 30% 이상 되도록 활성화한다"는 정책목표를 제시했고 민간에선 비중은 이미 미국과 유사한 수준이니 "양적 팽창보다 질적 향상이 더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정부의 통계는 민간시장에 올바른 시그널을 주고 타당한 정부정책을 수립하는데 중요한 근거다. 근거 없는 희망을 주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지게 해서는 곤란하다. 불과 5년여 전만 해도 중기부가 발표하는 벤처투자 동향에 금융위원회가 관리하는 VC인 '신기술금융회사'의 통계를 포함하지 않아 반쪽짜리 통계에 불과했다. 정부 정책의 신뢰도와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통계의 함정을 피할 수 있도록 정확하고 유용한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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