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31일 첫 출근길에서 1500원대의 원/달러 환율에 대해 "레벨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달러 유동성 지표들은 상당히 양호하다"며 "예전처럼 환율과 금융 불안을 직결시킬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고환율을 체감하는 경제 주체들의 시선과는 간극이 적지 않다.
외국인들이 한국 채권에 투자하기 위해 꾸준히 달러를 들여오고 있어 달러가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CDS 프리미엄도 30bp 안팎에서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당장 '달러 경색' 징후는 찾기 어렵다. WGBI 편입으로 추가로 들어올 달러까지 감안하면 금융 시스템 불안 국면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환율 급등에 따른 위기감을 공포로만 치부할 수 없다. 한국은 원유와 식량을 해외 수입에 기대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고환율은 기업의 에너지 비용과 국민의 밥상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의 마진 축소와 그에 따른 투자·고용 위축,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와 소비 둔화 등이 맞물리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환율 수치가 문제가 안 된다면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행보를 설명할 수 없다. 정부는 환율 급등의 원인을 이른바 '서학개미' 탓이라며 '국내 시장 복귀 계좌(RIA)'를 내놨다. 연금 계좌의 해외 투자에는 벌칙에 가까운 규제를 부과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두 달 안에 환율이 1400원 전후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한 것도 불과 두 달여 전의 일이다.
신 후보자의 발언은 중앙은행 수장으로서 시장 안정을 의식한 것일 수 있지만, 대통령의 공언과 충돌하며 정책 불확실성을 키운다. 중동전쟁으로 리스크가 고조된 지금, 환율의 이면에 숨겨진 기업과 가계의 비명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한은이 물가와 성장, 금융 안정을 위한 정책을 시작하는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