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코끼리 다리도 제대로 만져라

기광국 P&K피부임상센타 전략기획실 상무
2025.04.18 02:05
p&k피부임상센타 전략기획실 상무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누구나 아는 익숙한 속담이다. 누군가는 다리를 만지며 기둥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귀를 만진 뒤 부채라고 말한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아는 듯 착각하는 인간의 한계를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속담이다. 이 속담은 최근 화장품 수출을 준비하는 많은 기업이 생각해봐야 하는 점들을 시사한다.

요즘 화장품업계에서 '수출'은 거의 필수과제가 됐다. 특히 K뷰티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크고 작은 브랜드들이 미국, 중국,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려는 열기가 뜨겁다. 문제는 많은 기업이 단순한 기대와 부분적 정보만으로 수출시장에 뛰어든다는 점이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산업현장에선 '파편적 정보'를 쌓는 데는 능하지만 그것들을 하나의 유기적 그림으로 통합해 해석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각 부서, 각 전문가가 자기 분야에선 정밀한 분석을 내놓지만 그 총합이 곧 '성공을 위한 전략'은 아니다.

예컨대 화장품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 할 때를 보자. R&D팀은 기능성 성분의 효능을 강조하고 마케팅팀은 SNS 바이럴 전략에 집중하며 생산팀은 단가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각자의 시선은 유효하지만 이것들이 연결되지 않으면 '전혀 팔리지 않는 고기능 제품'이나 '유통채널에 맞지 않는 포장디자인' 같은 오류가 발생한다. 실제로 어떤 인디브랜드는 미국 화장품규제현대화법(MoCRA)의 라벨링 규정을 오해한 채 제품을 출시했다가 재포장 비용과 물류지연으로 수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요즘 같은 AI 시대는 특히 이런 문제가 더 부각된다. 온갖 데이터와 지표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람들은 '부분적 진실'을 숫자와 그래프로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클릭률만 높이면 매출이 오를 것처럼 생각하거나 팔로워 수가 곧 브랜드 충성도인 줄 착각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데이터는 전체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실제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한 브랜드는 식품의약국(FDA) 등록은 했지만 MoCRA에 따라 요구되는 안전성 서류와 책임자 지정, 라벨링 문구까지 확인하지 못해 제품을 전량 리콜할 위기에 처했다. 중국 시장의 경우에도 중국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 허가 없이 왕훙 마케팅만 앞세우다 플랫폼 퇴출이란 큰 비용을 치른 사례가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통합적 접근으로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는 e.l.f.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만 있는 저가브랜드가 아니다. 동물윤리협회(PETA) 인증을 받은 비건 포뮬러, MoCRA를 앞서 준비한 투명한 성분공개 시스템, 그리고 틱톡 기반의 밀레니얼·젠지(Gen Z) 마케팅 전략까지 모든 요소를 유기적으로 설계했다. 그 결과 월그린이나 타깃 같은 대형 유통망에도 안정적으로 입점했고 시가총액은 기존 브랜드를 위협할 수준으로 성장했다.

코스알엑스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이 브랜드는 미국, 동남아, 유럽 진출과정에서 단순 수출이 아닌 '글로벌 현지화 전략'을 택했다. 글로벌 버전의 제품 라벨링과 성분구성, FDA 등록과 CPNP(유럽통합화장품신고시스템)까지 철저히 대응하며 해외 인플루언서와 인체적용시험 데이터를 함께 활용해 신뢰도를 확보했다.

이런 기업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법규, 안전성, 품질관리, 마케팅, 유통'까지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과 협업했다. 브랜드 내부인력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각 조각을 통합해 전체 전략으로 그려낼 수 있는 구조와 안목이다.

수출이 대세가 된 지금 중요한 것은 '먼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다. 남의 성공만 보고 섣불리 따라가기보다 내 브랜드에 맞는 맞춤전략을 전문가들과 함께 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주변의 성공만 보고 코끼리 다리만 만지듯 진입한다면 뒷수습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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