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에선 흔히 말한다. "국회만 없으면 관료할 만 하다"고 . 그만큼 국회의 견제와 감시가 힘들다는 얘기다. 가끔 언론도 귀찮은 존재로 꼽히곤 한다.
하지만 진짜 두려움의 대상은 따로 있다. 감사원이다. '감사 포비아(감사원 감사에 대한 공포)'라고 부를 정도다. 죄 지은 게 아닌 마당에, 감사원 자체가 무섭진 않다. 공포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은 '정책 감사'다.
정책 감사는 감사 대상과 범위에 제한이 없다. 그래서 '도깨비 방망이'로 불린다. 결과가 잘못됐다고 문제되는 게 아니다. '좋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도마 위에 오른다.
정책 추진 자체가 감사 대상이다. 기획한 사람, 결재한 사람, 모두 줄줄이 불려간다.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어떤 경위로 판단했는지, 하나하나 따지고 캐묻는다. 영혼까지 털린다.
마치 범죄를 공모한 것처럼 '죄수의 딜레마'에 떠밀린다. "그 때 녹음이라도 해놓을 걸"이란 말이 농담처럼 오간다. 신뢰는 무너진다. 위에서 아래를, 아래는 위를 의심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제일 안전하다".
#'정책 감사'가 등장한 지 20년 남짓 됐다. 노무현 정부 때 '시스템 감사'란 이름하에 시작했다. 회계와 직무 감찰을 넘어선 정책 점검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법적 근거는 딱히 없다. 헌법 제97조는 "감사원은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 국가 및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감사원법 역시 '직무감찰'과 '회계검사'를 주된 기능으로 적시하고 있다.
근거가 불명확한데도 감사원의 정책 감사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대표 사례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금산분리 완화 정책'에 대한 감사다. 경제정책의 방향을 둘러싼 논란에 감사원이 개입했다.
2013년에는 이른바 '4대강 정책'에 대해 감사를 진행했다. 이후 '자원 외교' '탈원전 정책' '소득주도 성장' 등도 감사 대상이 됐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정책 감사'는 정권 교체 후 '정치 감사'로 존재감을 키워왔다.
# '법 없이 생긴 제도'가 20년 넘게 행정을 짓누르는 사이 모든 게 후퇴했다. 공직 사회에선 '소극 행정'이 정답이 됐다. 정책 결정은 '미래를 향한 결단'이 아닌 '감사 회피'로 정리된다.
사전적 설계에 대한 칭찬은 바라지도 않는다. 사후적 책임 추궁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문구 한줄, 단어 하나가 다 위축된다. 어제의 정책은 오늘의 비리가 되고 공직자의 결단은 내일의 징계 사유로 둔갑한다.
정책 감사에 돌입하는 순간 정책은 정치가 된다. 정책의 필요성과 타당성, 절차와 과정 대신 정치적 의도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렇게 정치화된 정책은 단절된다. 국가적 결과물은 몇 년짜리 소모품이 될 뿐이다.
관가의 인사의 방향도 달라진다. 변화보다 유지, 실험보다 관리를 하는 쪽이 발탁된다. 비전은 밀리고 안정만 남는다.
# '도깨비 방망이' 탓만 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래도 지난 20년,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멈춘 시기와 '도깨비 방망이'의 활약 시기가 절묘하게 겹친다고 답하고 싶다. 구조개혁, 산업재편 등이 시급한 과제지만 정작 '정책 감사'로 손발을 묶은 채 뛴 것은 아닌지….
모든 정부가 규제 개혁을 외치지만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회의를 열건, 대통령이 수많은 건의사항을 메모하건, 종국에는 '정책 감사'라는 '거대 빌런'을 만나게 된다. 그 결과는 뻔하다. 신산업 정책, AI 혁신, 에너지 전환 등을 강조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 현실도 곧 마주할 것이다.
정책 실패는 검토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 역할은 정부를 견제·감시하는 국회의 몫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이 정책의 타당성을 묻고 따지는 것, 그것이 헌법 정신에도 맞다.
감사원은 회계와 직무감찰이라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새 본연의 업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면서 말이다.
정부·여당이 '도깨비 방망이'의 달콤한 유혹을 내려놓으면 간단하다. 20년만의 결자해지(結者解之)다.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의 출발점은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