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10·29 부동산 종합대책' 때 종합부동산세 신설 방침이 공식화된다. 종합부동산세법이 제정되고 시행된 것은 2005년이다.
그해 8월 31일. '8·31 부동산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진보 정부의 '집값 트라우마' '부동산 대책 트라우마'가 본격화된 날이다.
시행된 지 얼마되지 않은 종합부동산세는 더 강화된다. 과세 대상은 세대별 합산으로 변경하고 고가주택 기준을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낮췄다. "대상자는 극히 일부" "담세 능력이 없으면 집을 팔면 된다"고 정부는 공언했지만 결국 허언이 됐다.
정부는 세율 인상, 과세 기준 강화, 거래 제한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쟁'에 나섰다. 규제와 공급을 동시에 썼지만 시장은 세제 강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결과는 '안정'이 아니라 '풍선효과'였다. 정부의 '세금 해법'은 시장의 '적응력' 앞에서 무력했다.
# 참여정부 후반 정부는 세금 대신 대출 규제를 꺼냈다. 세금 해법이 먹히지 않을 때 찾아낸 '유레카'였다. 2006년 3월,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도입한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 정책으로 발제했지만 집값 급등에 시달리던 정권은 대출 규제의 칼을 휘둘렀다. 본래 목적은 가계부채 억제였지만 정책 방향은 부동산 통제로 변질됐다. 대출 규제가 부동산 정책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순간이다.
시장은 반응했다. 대출이 막히자 거래가 줄었다. 단기적으로 집값 상승세가 꺾였다. 정부는 이를 '정책 효과'로 해석했다. '세금'보다 '돈줄'이 열쇠라는 왜곡된 인식이 퍼졌다.
돌이켜보면 당시 집값 하락은 외생 변수에 의한 일시적 진정 성격이 강했다. 대출 규제는 집값 안정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시스템 전이를 막는 안전장치였다. 정부는 그러나 '부동산 정책의 성과'로 착각했다.
#이후 부동산 정책사는 '오류의 회고록'이다. "대출을 조이면 잡힌다"는 근거없는 경험이, 공직사회에 뿌리내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런 패턴은 더욱 강화됐다. 부동산 대책은 곧 대출 규제였다. '갭투자 차단', 'LTV(담보인정비율)·DTI 강화'가 정책의 전부였다.
집값 급등이 정치적 책임으로 돌아오자 정부는 '규제 강화'로 대응했다. 문제의 원인을 시장이 아닌 정책 실패에서 찾아야 했지만 방향은 항상 반대였다
대출 규제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였다. '금융시스템 안정'이란 가계 대출 관리 목표는 잊혔다. '집값 안정'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했다.
20여 차례에 달하는 대책이 나왔지만 결과는 다 아는 바다. 시장은 정책보다 한 발 빨랐다. 풍선효과와 패닉바잉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집값은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섣불리 건드린 '공정가액 현실화'는 '세금 정책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재명 정부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치 이전 정부들의 실패는 '도구의 부족' 때문이었다는 듯, 다시 '총동원령'이다. 그러나 핵심 문제는 도구의 숫자가 아니라 정책의 기억이다.
공급 확대를 내세웠지만, 여전히 시장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출 규제는 먹힌다", "보유세를 강화하면 내놓는다"는 과거의 인식이 그대로 이어진다.
그러나 시장은 다르게 기억한다. 그 기억은 냉정하고 구체적이다. 정부가 DTI를 강화할 때 시장은 '비규제 지역'으로 이동했다. 세금을 올릴 때 '임대사업자 등록'이나 '법인 전환'으로 빠져나갔다. 대출을 막으면 현금 부자만이 살아남았다.
시장은 늘 규제의 틈새를 학습했다. 정부가 정책의 성공(?)을 '자찬'하는 동안 시장은 실패의 이유를 '기억'했다. 정책의 기억이 왜곡될수록 시장의 신뢰는 멀어진다.
세금·대출·공급 등 종합세트 약발이 안 먹히는 것은 결국 신뢰의 문제다. 정책은 현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시장은 전쟁의 상대가 아니라 '기억을 공유해야 할 파트너'다.
정책의 망각이 반복될수록 신뢰의 균열은 깊어진다. 역사는 늘 기억하지 못한 자에게 같은 시험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