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북의 미래, '사대문안의 공존'

제해성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2025.11.20 05:45
제해성 아주대 명예교수(전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최근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의 고도 제한을 완화한 서울시 조례가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년간 이어진 '보존이냐 개발이냐'는 해묵은 논쟁에 중요한 전환점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강대강' 대치의 시작점이 됐다. 서울시는 법적 족쇄가 풀렸다며 2026년 착공을 목표로 사업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대법원 판결이 개별사업의 경관 훼손 여부를 판단한 것은 아니라며 문화재위원회 고유 심의로 여전히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심지어 유네스코에 '위험 유산' 등재 가능성을 경고하는 모니터링 요청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 첨예한 대립은 우리가 '보존이냐, 개발이냐'는 낡은 이분법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법적 정당성(서울시)과 문화재 보존 원칙(국가유산청)이 한 치의 양보 없이 평행선처럼 충돌하는 사이 정작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도시미학적, 정책적 논의는 실종됐다.

갈등을 넘어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서울 사대문안의 활성화는 강북 전체를 다시 뛰게 할 핵심 동력이다. 세운4구역 재개발은 20년간 멈춰 있던 사대문안 개발의 물꼬를 트고 쇠퇴한 강북 발전을 이끌 중요한 시발점이자 계기다. 그간 사대문안을 무조건적으로 덮고 있던 전반적인 고도 제한은 아이러니하게도 강북 전체의 쇠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강북이 강남처럼 매력적인 장소가 되기 위해선 옛것을 소중히 보전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담아낼 과감한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세운4구역 판결과 갈등은 '지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단순한 법적 다툼을 넘어 '어떻게 잘 지을 것인가'의 창의적인 디자인적, 정책적 해법을 모색하라는 시대적 요구다.

해외 도시들은 이미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런던은 더 샤드(The Shard) 같은 초고층 빌딩을 허용하면서도 세인트폴 대성당의 시야를 보호하는 정교한 '경관관리체계(LVMF)'를 운영한다. 개발과 보존이 투명한 공론의 장에서 합의되는 '거버넌스형 경관 정책'의 훌륭한 모범이다. 도쿄 역시 마루노우치나 아자부다이 힐스에서 보듯 고층 개발 속에서도 보행 공간과 공공성을 확보하고 역사와 현대의 공존을 제도적으로 관리한다. 이들 도시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건물의 '높이' 경쟁이 아니라 스카이라인의 '고저 리듬'과 도시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총체적인 디자인의 조화다.

세운4구역의 새 출발은 강북 전체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실험이다. 서울시와 유산청이 각자의 원칙만을 고수하며 힘겨루기를 할 때가 아니다. 갈등을 계기로 정교한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성숙한 공공 심의를 통해 보존 가치와 도시 혁신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서울형 공존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종묘와 고층 빌딩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풍경은 쇠퇴하던 강북이 다시금 서울의 활력 넘치는 중심으로 부활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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