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매년 7~8건의 스파이 사건이 발생한 냉전기 막바지 1980년대를 '스파이의 시대'(Decade of the Spy)로 칭한다. 특히 1985년은 미국 언론이 '스파이의 해'(Year of the Spy)로 부를 만큼 대단한 사건이 많았다. 해군 준위로 무려 17년간 통신암호를 소련에 제공해 100만건 이상의 비밀 전문을 노출한 존 워커, CIA에서 30년간 중국 전문가로 근무하며 중국으로 정보를 빼돌린 래리 우타이 친 등 많은 거물급 스파이가 1985년에 체포됐다.
1991년 냉전이 끝나면서 줄어든 스파이 활동은 2020년대 들어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하고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에 전운이 감돌자 급격히 증가했다. 최근 상황을 보면 2020년대가 다시금 '스파이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2022년 7월 영국 방첩기관 MI5와 미국 FBI 국장이 역사상 처음으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의 위협을 경고했다. MI5가 조사 중인 영국 내 중국 스파이 사건이 5년 전보다 7배 늘었고 FBI는 약 12시간마다 새로운 중국 관련 방첩 조사에 착수한다면서 경각심을 촉구했다.
중국도 2023년 7월 반간첩법을 개정해 스파이 활동을 강력히 처벌하는 한편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가 직접 전 국민 방첩교육에 나섰다. 2024년 8월에는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간 냉전 이후 최대규모인 24명의 스파이 교환이 이뤄졌고 지난해 12월엔 우크라이나 국영통신 우크린포름이 러시아 침공 이후 유럽 각국이 추방한 외교관 신분 러시아 정보요원이 700여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2025년엔 처음으로 스파이의 피해를 경제적으로 계산한 통계가 나왔다. 호주 방첩기관(ASIO)이 스파이로 인한 국가적 피해를 연간 125억 호주달러(약 12조4000억원)로 추산해 발표한 것이다. 스파이 활동이 증가한 데는 정보의 디지털화가 크게 기여했다. 정보의 복사와 이전이 극도로 쉬워졌고 해킹으로 원격 정보유출이 가능해졌으며 스파이 물색과 채용도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지는 시대다. 중국은 취업사이트 링크드인을 통해 스파이를 물색하고 미국 CIA는 러시아·중국·북한인들을 스파이로 채용하기 위해 각국어로 제작한 영상을 텔레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 배포한다.
국가간 정보전은 늘 치열하지만 실제 노출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최근 스파이 사건의 빈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정치에서 정보전의 파고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국제정세가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선 정보전이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외 정보기관을 두지 않던 일본이 올해 안에 국가정보기관을 창설하겠다며 입법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날로 치열해지는 정보전에서 우리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국력신장으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커져감에 따라 각국의 우리에 대한 정보활동은 급속히 늘고 있다. 간첩은 북한에서만 온다는 생각에서 형법상 간첩죄 대상을 '적국'을 위한 행위만으로 한정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국가간 스파이 전쟁에 더 큰 관심을 갖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