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출신 방송인 기안84(본명 김희민)의 인기가 갈수록 상승한다. 그는 배우나 아이돌 출신이 아니지만 방송·콘텐츠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한다. 특히 2030 청년들에게 그의 생활방식과 태도는 웃음을 넘어 강한 공감의 대상이다. 왜일까. 이는 오늘의 청년들이 처한 구조적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그의 인기배경을 '기안84만의 특이한 캐릭터'에서 찾는다. 그는 성공모델 대신 허술함과 어설픔, 날것의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성공한 웹툰작가이자 방송인이지만 정리되지 않은 집과 편의점 음식, 무기력한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솔직함은 경쟁에 시달리는 2030세대에게 위안을 준다.
오늘의 청년들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자조 속에서 살아간다. 출발선부터 다른 흙수저 현실, 끊어진 계층이동의 사다리,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N포구조, 영끌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자산격차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런 조건에서 기안84의 '완벽하지 않은 일상'은 성공의 공식을 제시하지 않지만 흔들리고 실수하며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청년들에게 위로를 준다.
물론 그의 솔직함이 늘 긍정적으로 평가된 것은 아니다. 웹툰 '복학왕'에서는 장애인과 외국인 비하 논란이 있었고 일부 발언은 성차별 논란을 낳았다. 이런데도 그가 호감인 이유는 날것의 현실을 꾸미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기안84는 자신을 과도하게 관종처럼 포장하지 않는다. 실패와 무기력, 결핍을 숨기지 않는다. 이는 경쟁에서 이겨야만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이 사회에서 2030이 잠시 자신을 내려놓고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삶의 민낯'이다.
더 주목할 점은 이러한 공감이 개인 캐릭터에 대한 호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면에는 오랜시간 반복된 586 기득권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과 분노가 놓여 있다. 청년들은 '조국사태' 등을 통해 공정과 정의를 말하면서도 기득권만 챙기는 정치권의 위선을 목격했다. 그 결과 제도권 정치가 제시한 성공의 서사와 희망의 언어는 설득력을 잃었고 오히려 기안84처럼 꾸밈없는 인물에게 현실의 진정성을 발견하게 됐다.
기안84의 언행은 586 정치인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정의로운 말과 모범생 이미지를 연출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허술하고 불완전하지만 위선을 떨지 않는다. 청년들은 이 차이를 예민하게 감지한다. 기안84를 향한 공감은 곧 지금의 586 정치권이 청년의 삶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무언의 평가다.
결국 기안84의 인기는 단순한 캐릭터 소비가 아니다. 그는 이생망·흙수저·N포·영끌세대의 현실을 담아낸 존재이자 기득권 정치와 청년세대 사이의 단절을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 정치가 청년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말뿐인 2030 담론이 아니라 586 기득권 타파와 구조개혁으로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