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배임죄 폐지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배임죄가 남용돼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2달 뒤 당정이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을 통해 형법상 배임죄 폐지 계획을 발표했지만 후속절차는 함흥차사다. 상법 개정안이나 사법개혁 3법을 통과시킬 때 보여준 속도감과 대조된다.
형법상 배임죄는 기업을 옥죄는 대표적인 규제다. 구성 요건이 불명확해 경영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형사절차로 끌고 가는 사례가 빈번하다. 사적 이해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것이다. 배임죄는 사건화가 됐지만 경찰 단계에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검찰에 불송치한 비율이 2023년 70.9%에 이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전체범죄 불송치 비율 24.3%나 재산범죄 불송치 비율 28.0%를 크게 앞선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돼 앞으로 배임죄 남발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수사 끝에 불기소되거나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돼도 형사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수년 동안 기업인들은 이미지가 실추되고 경영활동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은 AI(인공지능) 확산과 잇따른 지정학적 분쟁, 공급망 변화 등으로 다중의 불확실성을 마주하고 있다. 투자와 구조조정을 결단하는 데 그 어느 때보다 신속성이 요구될 때 배임죄 리스크가 장애가 되면 안된다.
정부와 정치권이 우리 경제의 외부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경제전쟁의 최일선에 있는 기업들이 발빠른 결정을 할 수 있게 배임죄를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한시라도 빨리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 환경은 하루 앞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시시각각 바뀐다. 배임죄 족쇄에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하는 불행한 사례가 더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