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나무 아래 시집 한 권 / 포도주 한 잔과 빵 한 덩이 / 그리고 그대가 곁에서 노래한다면 / 오, 사막도 천국이 되리."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카이얌은 인간다운 삶의 3대 조건으로 빵과 자유, 그리고 사랑을 꼽은 듯하다. 시인의 1000년 후손인 이란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최근 이란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 전 경례를 하는 사진을 보았다. 그녀들은 며칠 전 국가를 부르지 않았대서 반역자로 낙인찍힌 상태였다. 이번엔 경례를 올려붙였건만, 손끝은 흐느적거렸고 눈은 내리깔고 있었다. 일부는 끝내 국가를 부르지 않은 듯했다. 강요된 충성, 영혼 없는 경례의 모멸과 수치가 그녀들을 망명에 이르게 했을까.
반란은 대개 빵(민생) 문제에서 발생한다. 필자가 테헤란에 부임한 2012년 공식 환율은 달러당 1만2000 리알이었다. 2014년엔 공식 환율은 그대로인데 암시장 환율이 3만 리알까지 올랐다. 외교관으로서 공식 환율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암시장 환전을 통해 사업비를 두세 배 늘릴 것인가. 절차를 통해 후자를 선택했었다.
현재 환율은 140만 리알대다. 14년간 화폐 가치가 118분의 1로 줄었다.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남대문시장의 100배 면적) 상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릴 당시 선봉대이자 자금줄로서 혁명의 주체세력이었다.
그간 이란에선 평균 4년에 한 번꼴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수백 명씩 희생자가 나왔다. 이번엔 수천 명(최대 3만 명)이 학살됐다. 이슬람 공동체가 붕괴된 것일까. 모두가 '자유'를 외치지만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됐다는 건 분명하다.
이란은 '아자디', 즉 자유의 나라다. 1979년 혁명 구호가 "독립, 자유, 이슬람 공화국"이었다. 이란 헌법에서 "자유"는 23번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이란 시위대 역시 "여성, 생명, 자유" 또는 "자유, 자유, 자유"를 외친다.
여자 축구선수들의 침묵은 국가가 자신의 몸과 삶에 개입하지 말고 그냥 냅둬주기를 원하는 소극적 자유에의 요구였다. 반면 신정체제는 그것을 신의 사랑이라는 지고지선의 적극적 자유에 대한 거부, 즉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여겼다.
람보식 제국주의자 도널드 트럼프는 "이란 국민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지만, 침묵마저 반역 행위가 되는 전쟁통에 누가 길거리에서 입을 열 수 있겠는가.
축구를 선택한 그녀들은 이미 자신의 방식으로 자유를 찾은 삶의 주인공들이다. 여성의 신체활동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분위기 속에서도 히잡과 전신운동복을 뒤집어쓴 채 선수 생활을 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우면서도 가슴벅찬 도전이었을까.
춘분(3월 20일)은 이란력 1405년의 첫날(노루즈)이다. 망명을 했든 귀국을 했든, 그녀들이 평화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기를 바란다. 21세기에 중세 시대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이란이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고 신의 자비로, 빵과 자유 그리고 사랑이 흘러넘치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