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다시 돌아온 힘의 세계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2026.04.10 02:00

2026년에도 강대국들은 국제법을 무시했다. 4년 전 러시아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을 막는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금년 벽두부터 미국은 마약 밀매 등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잡아갔다. 그 어디에도 자위(自衛) 목적 외에는 타국에 무력행사 하지 말라는 국제법의 존중은 없었다. 소련 등 공산권의 붕괴 이후 짧게 존재했던 세계화 시대는 이로써 막을 내렸다. 1990년대엔 사람들이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와 '세계는 평평하다'를 읽으며 대립과 반목의 세계는 사라지고 무역과 기술진보의 세계가 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렉서스로 상징되는 세계화는 곧 '친구와 적'을 나누는 올리브나무의 옛 세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2001년에 9·11 테러가 발생했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졌다. 이후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되면서 마지막 남은 세계화의 잔광(殘光)도 사라졌다. 그리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의 베네수엘라 기습공격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미국의 이란 폭격을 보고 있다. 물론 미국에도 명분은 있다. 이란은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을 외치는 중동 평화의 교란자다. 그리고 우라늄 농축도를 60%까지 올려놓고 있어서 핵무기급인 90%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제법은 자위 목적 외의 무력사용을 금지한다. 이 국제법의 명령을 미국은 간단히 무시한 것이고, 국제여론은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정적이다. 하지만, 강대국은 원래 국제법을 잘 따르지 않는다. 강대국은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내와 달리 국제사회엔 강대국에 국제법 준수를 강요할 검찰, 경찰, 법원이 없다.

17세기 중반 만주에서 기세를 올려가던 청나라의 홍타이지(태종)는 명나라 공격 전 측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아직 친명(親明)인 조선을 침공했다. 청나라의 정예 기병은 재빨리 남하해 서울을 공략했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조선 조정은 청나라의 공성전, 포위전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했다. 그리고 조선 왕은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땅에 찧은 후 청 황제의 신하가 되었다. 청 제국은 외교 등에는 철저히 간섭하지만 그 외의 영역에는 어느 정도 자율을 인정했다. 러시아와 미국이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이란을 침공하는 것도 비슷한 목적을 위해서다.

우리 인류에게 1990년대는 짧았던 한여름밤의 꿈이었다. 20세기만 해도 수백만 명,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계대전이 두 차례 있었고, 중국의 국공내전, 한국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중월전쟁,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포클랜드 전쟁 등이 이어졌다. 1990년대가 예외적이었을 뿐, 갈등과 반목이 세계의 오랜 모습이다. 이제는 국경을 허무는 무역이 아니라 싸늘한 지정학적 계산에 따라 조선을 침공하는 홍타이지들이 세계를 이끌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류가 살아왔던 힘의 세계를 다시 만나고 있다. 세계화의 꿈에서 막 깨어난 우리에게 아직은 낯설지만, 이제는 그 부조리(不條理)를 불평만 할 수 없다. 이 부조리 속에서 새로운 조리를 찾는 것이 참다운 지혜가 될 것이다.

김동규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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