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기고]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고진수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2026.04.10 04:46
고진수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사진제공=본인
고진수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사진제공=본인

서울에서 전세를 구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전세 매물은 빠르게 줄고 월세 전환은 가속화되면서 서울 아파트 월세 지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매달 빠져나가는 주거비가 서민 가계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내 집 마련'은커녕 '내 방 유지' 조차 버거운 현실이 일상이 됐다. 공공주택이 더 필요하지만 서울에는 남은 빈 땅이 많지 않다. 이 딜레마 한가운데에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이 놓여 있다.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의 근본적 발상은 명쾌하다. 역세권이라는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땅을 수직으로 활용하되 용적률 상향이라는 공적 혜택의 대가로 개발이익의 절반 이상을 장기전세주택으로 환수하는 것이다. 2007년 주택 패러다임을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언 아래 2008년 첫 삽을 떴다. 입주자는 주변 시세의 80% 이하로 전세보증금을 내면서 연 5%의 인상률을 넘지 않는 조건으로 최장 20년간 거주할 수 있다. 월세로 내몰리는 시대에 전세라는 형태 자체가 자산 형성의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복지를 넘어 '주거 사다리'로서의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정책적 성과도 축적되고 있다. 현재까지 66개소에서 5만4536세대의 사업이 추진됐는데 특히 2021년 규제 완화 이후 연평균 구역 지정 수는 4.3배 증가했다. 2024년 12월부터는 공급 물량의 절반을 신혼부부 대상 '미리내집'으로 전환해 저출산 문제에도 응답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제도가 주택 공급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층·노후 건축물이 밀집한 역세권 주변의 도로, 보행환경, 공원 등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고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 고밀·복합 개발을 유도함으로써 압축도시라는 도시계획적 목표에도 부합한다.

최근 서울시는 공급 확대의 의지를 한층 분명히 했다. 기준 용적률을 최대 30%까지 높이고 사업 대상지를 간선도로 교차지까지 넓혔다. 사전검토와 계획검토를 하나로 합쳐 사업기간도 약 5개월 앞당겼다. 소형주택 공급 시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공시지가가 낮은 지역에 보정계수를 적용하는 시도는 수요 맞춤과 균형발전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반가운 성과 속에서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있다. 서울시민의 주거 안정에 분명히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만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중앙정부는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다른 공공임대와 마찬가지로 장기전세주택에 대해서도 주택도시기금 지원이 이뤄질 때 서울시민에게 더 큰 주거 안정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역세권의 용적률 완화를 통한 장기전세주택 공급도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 모든 역세권이 고밀개발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대상지의 정주 여건을 세밀히 점검하고 과밀 지역에서는 추가 승인을 조절하는 유연한 운영이 뒷받침돼야 한다. 공공토지가 부족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어린이집·도서관 등 공공시설과의 복합개발을 통해 한 뼘의 땅에서 더 큰 공공 가치를 끌어내려는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서울의 주거 위기가 깊어질수록 역세권 장기전세주택의 존재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높이를 올리는 속도만큼 시민의 삶을 살피는 깊이를 갖출 때 이 제도는 특정 계층의 혜택이 아닌 서울 주거 시장 전체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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