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다시 헌법으로…농협 개혁의 답을 묻다"

김원철 농협자율성수호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2026.04.29 06:00
농협자율성수호비상대책위원회 김원철 공동위원장(전북 부안농협 조합장) /사진=농협중앙회

지난 4월 21일, 일 년 중 가장 바쁜 영농철에 2만 명의 농업인 조합원이 서울 여의도 대로에 모였다. 최근 발의된 농협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 그리고 헌법이 보장한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지켜달라는 요구였다.

집회를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2000년도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축협·인삼협 중앙회는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경영 혼란을 겪었고, 결국 농협과의 강제 통합이라는 결정을 맞이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과정에서 제기된 헌법소원(99헌마553)에 대해, 협동조합의 자율성은 헌법상 보장되는 원칙이지만 '기능부전' 상태에서는 국가의 입법적 개입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현행 농협법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26년 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내려진 판단을 오늘의 농협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첫째,'기능부전'의 기준이 지나치게 확대 해석되고 있다. 당시 헌재가 통합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농협과 축협 간의 불필요한 경쟁과 중복 투자가 심각해 농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었고, 외환위기 이후 축협중앙회의 경영 부실이 급격히 심화되고 있었다. 조직 전체가 사실상 경영 마비 상태에 이른 극단적 위기 상황이었다.

반면 현재 농협은 안정적 경영 성과를 유지하며 농촌 경제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부 임직원의 비위나 내부 문제는 사법적 처벌과 내부통제 강화로 해결할 사안이지, 조직 전체의 지배구조를 뒤흔들 이유가 될 수 없다. 헌재가 조직의 정상 작동 불능 요건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것 자체가 그 기준이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부분의 일탈을 전체의 기능부전으로 확대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

둘째, 헌법이 요구하는 것은 '지배'가 아니라 '육성'이다. 헌법 제123조 제5항은 국가에 농어업협동조합의 자조조직을 육성할 의무를 부여했을 뿐, 지배와 통제의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 헌재 역시 국가의 역할을 육성 및 감독으로 한정했다. 현재의 개정안은 자율적 개선 노력이나 충분한 시정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은 채 지배구조 변경을 목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는 입법이 최후의 수단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셋째, 시대적 환경이 이미 크게 달라졌다. 2000년대 초반 관치 경제의 논리를 민간 자율 경영이 강조되는 지금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농협은 이미 조합원 참여 확대와 상향식 의사결정을 통해 자치 역량을 키워왔다. 일방적 법 개정은 이 민주적 역량을 오히려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넷째, 농협의 흔들림은 곧 농업인의 피해로 이어진다. 이 논의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중앙회는 단순한 조직의 정점이 아니라, 전국 1,110개 지역 농축협이 기대는 지원체계의 중심이다. 영농자재의 대량구매를 통한 비용절감, 농축산물 판로확대와 산지유통 혁신, 농촌지역의 의료·교육·문화·복지 서비스 제공까지 중앙회를 통해 현장에 공급되는 농업 발전 재원은 연간 5,000~6,000억원에 달한다.

중앙회의 지배구조가 외부 통제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이 지원체계 전반에 균열이 생긴다. 경제사업 추진력이 약화되고, 농축협 육성 지원과 조합원 실익사업이 위축된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업인에게 돌아간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개정안이야말로 헌재가 경계한 '농업인 피해'를 자초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참여와 지역 경제를 기반으로 운영될 때 가장 큰 가치를 만든다. 정부의 정책 수단으로만 기능하는 조직으로 전환된다면, 그 본래의 역할은 약화 될 수밖에 없다.

개혁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향은 이미 헌법에 제시되어 있다. 국가는 협동조합을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존재여야 한다. 이제 다시 헌법으로 돌아가 농협 개혁의 길을 묻고 답해야 할 때다. 헌법은 협동조합의 자율을 '육성'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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