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의 자서전 '생각하는 기계'에는 어떻게 그래픽카드 회사에서 세계 최고의 AI(인공지능) 기업으로 변신이 가능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여정이 담겼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 사업에서도 성공적인 기업이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ICT(정보통신기술)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긴 어려웠다. 황 CEO는 일찌감치 AI의 가능성에 주목했고 주변의 만류에도 꾸준히 투자를 이어갔다. 특히 지금의 엔비디아를 있게 한 소프트웨어 플랫폼 '쿠다(CUDA)' 관련 투자에 대한 반대가 컸다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엔비디아처럼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하게 베팅해 성공한 사례는 적지 않다. "힘들수록 도전하라, 투자를 더 늘리라"는 말은 기업인이 아니라도 많이 들어봤을 격언이다. 문제는 당위성에 공감하더라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당장 실적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언제 결실을 볼지도 모르는 미래 사업에 돈을 넣기는 쉽지 않다.
요즘 자동차 업계도 비슷한 고민에 직면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급격한 시장 변화가 일어나며 어떤 분야에 투자해야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최근 수년 사이 전동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전통의 강자들은 입지가 약화했고 첨단 기술로 무장한 신흥 세력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물론 이들마저도 앞으로 5년 후의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자동차 발명 후 지난 140년 동안 이뤄진 변화보다 더 크고 빠른 '모빌리티(mobility·이동성) 혁명' 속에서 어떤 기업이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대자동차그룹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아 창립을 기준으로 하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80주년이 된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이다. 그럼에도 최근 현대차그룹의 행보를 보면 완성차 메이커로만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로보틱스다. 실제로 올해 초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아틀라스'가 손을 흔들며 무대에 등장한 이후 현대차그룹의 이미지는 크게 바뀌었다. 주식 시장이 열광하는 미래 첨단 성장동력을 발굴한 모빌리티 그룹으로서 존재감이 드러난 것이다.
국내 투자의 초점도 '미래'에 맞춰졌다. 총 9조원을 투입하는 새만금 사업은 로봇과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수전해 플랜트, 태양광 발전, 수소시티로 구성됐다. 모두 단기간 내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분야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국내외에서 대대적인 인재 채용에 나섰는데 주요 모집 분야 역시 자동차보단 이같은 미래 사업에 무게를 뒀다.
현대차그룹이라고 이런 결정이 쉬웠을 리 없다. 비교적 안전한 자동차 사업을 지속하는게 나을 것이란 생각, 자칫 미래 사업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양한 변화를 택한 건 그간의 성과에 안주하는 순간 성장이 멈출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엔비디아도 과감한 도전을 통해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의 AI 회사로 성장했다는 '생각하는 기계'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현대차그룹의 미래에도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