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누구를 위한 납품 대금 지급 기한 일괄 단축인가

최자영 숭실대 교수(한국유통학회장)
2026.05.08 05:00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유통분야 대금 지급기한 개선 방안'을 두고 유통 업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직매입 거래 대금 지급 기한을 현행 60일에서 30일로 단축하는 것이 이번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의 핵심이다. 이는 티메프 사태로 대금을 받지 못한 납품업체들의 피해가 속출한 데 따른, 납품업체 보호와 유동성 제고를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유통 업계는 대금 지급 기한의 일괄 단축이 중소 납품업체보다 자본력 있는 대기업이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명품 납품업체는 백화점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고, 대형마트는 대기업 납품업체 비중이 높다. 편의점도 납품업체의 약 70%가 중견·대기업이다.

대금 지급 기한 일괄 단축이 납품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유동성 강화로 이어질 경우, '납품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대규모유통업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업태 특성과 채널별 납품기업의 규모와 비중을 고려해 중소 납품업체는 대금 지급 기한을 30일로 단축하고, 중견 및 대기업은 현행 60일을 유지해야 한다는 유통 업계의 의견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공정위는 중소 납품업체만 대금 지급 기한 단축을 적용할 경우, 유통사가 대금 지급 기한이 긴 대기업으로 거래가 집중되는 현상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는 유통업의 본질을 간과한 시각이다. 유통사가 납품사를 선정하는 핵심 기준은 '대금 지급 기한'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가'이다. 오히려 대기업은 생산 라인의 경직성 때문에 유통사의 요구에 신속한 대응이 어렵지만, 중소기업은 빠른 의사결정과 유연성으로 혁신적 상품을 선보이며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대금 지급 기한의 차등 적용이 대기업 편중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는 것이 유통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진정한 상생은 획일적인 잣대로 시장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 조성에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유통 업계가 제안하는 '납품업체 규모별 차등 적용'과 '조기 지급 참여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은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다.

중소 납품업체에는 빠른 대금 지급으로 유동성을 높여 혁신 상품 개발을 돕고, 중견·대기업은 기존 시스템을 유지해 불필요한 혼란을 막자는 것이다. 또한 강제적 처벌이 아닌 자율적 참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제공은 유통 산업 발전을 저해하지 않고, 동기부여를 통해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보다 효과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정책의 성패는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증명된다. 중소 납품업체를 보호하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대기업에 더 큰 혜택이 되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이것은 '규제의 역설'이다. 공정위는 규제 적용에 앞서 유통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교한 정책 설계'다.

최자영 숭실대 교수(한국유통학회장).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