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데뷔 36년만에 첫 수상을 한 배우는 "후보로 오른 게 이번이 처음인데 이렇게 귀한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지난달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 조연상(방송부문)을 받은 유승목 배우 얘기다.
본래 대학로 연극에서 출발해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그는 여러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고생 끝에 히트작(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연봉 수십만원이 상징하는 생활고와 숱한 아르바이트 일자리, 가족들의 이해와 희생같은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유승목 배우는 10여년전 중학생 딸이 용돈이라며 건네준 2만원을 액자로 만들어뒀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로를 지켰거나 새로 입성해 더 큰 연기무대를 꿈꾸는 그들의 후배들은 어떨까. 안타깝지만 그들이 통과해야 할 바늘구멍은 더 좁아졌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중·대극장 연극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대학로의 순수 예술 중심 소극장 창작 연극들은 고전을 면치 못 한다. 드라마 공급 편수도 2022년 136개에서 2024년 108개로 약 20.6% 줄었다. 영화쪽은 더 참담하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수십 편 이상 활발히 쏟아지던 한국 영화 개봉작은 급감했다. 올해 극장에 걸릴 영화는 22편에 불과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관람 풍토의 변화로 이어지면서 소극장과 영화관은 관객의 발길이 현격히 줄었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은 넷플릭스같은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유튜브였다. 초창기에는 안정적인 제작환경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컨텐츠 제작 기회는 소수의 스타급 배우와 창작자에게만 돌아갔다. 컨텐츠 생태계의 밑단을 담당하는 배우, 스태프, 연출자들은 무대경험 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창작 기반이면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고갈 위기를 겪었던 문예진흥기금과 영화발전기금은 편성규모가 정부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창작자들의 어려움과 달리 넷플릭스코리아의 몸집(매출)은 2020년 4154억 원에서 2024년 1조 542억 원으로 5년 만에 2.5배 이상 불어났다. 관객과 시청자들이 영화와 연극 관람료 대신 앞다퉈 구독료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적재산권(IP)을 독점하는 넷플릭스는 돈을 벌었는데도 비용(멤버십구독료 해외본사 송금)을 늘려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 휴대폰을 통해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이들이 많은데 망 사용료 납부에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영상 산업의 발전 과정을 돌이켜 보자. 1980년대 후반 미국의 제작·배급사가 한국내 투자제한 없이 영화를 직접 들여올 때, 98년 이후 2000년대 초중반까지 통상협상의 걸림돌로 스크린쿼터(연간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철폐와 감축요구가 등장했다. 당시 국내 영화인들이 이를 막아내려고 연대했다.
하지만 현재 넷플릭스 등 OTT 공습으로 연극과 영화의 몰락을 넘어선 멸종까지 우려됨에도 폭풍 전야 속 고요를 연상하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슈퍼갑'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제작 관계자와 관련 인력들은 침묵을 지킨다. 이제는 문화예술계에서도 글로벌 플랫폼의 불공정 거래 실태를 고발하고 세금납부와 댓가지불을 촉구하는 집단적 목소리를 낼 때다. 국회는 지지부진한 망 사용료 의무화와 과세 관련 법안 정비와 처리 속도를 높이고, 창작자의 정당한 몫을 보장하는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영화 개봉뒤 OTT에 공개할때까지의 기간을 일정 기간 이상으로 늘리는 제도(홀드백)는 수년째 논의만 진행 중이다.
최근 대학로에서 본 사실주의 연극 속에서, 암 투병 중인 어머니가 배우인 딸에게 '그 가난한 연극을 왜 하려고 하느냐'고 눈물을 떨구는 장면을 봤다. 1980년대 서울 변두리 철거민이었던 어머니는 40여년뒤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난 상태고 가난 때문에 멀어졌던 딸을 자신의 생일날에 또다시 질책하는 내용이었다. 어머니역 배우(장하란 분)가 서울연극제 연기상을 받을 정도로 관록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면서 극중이지만 그 회한이 더 진하게 다가왔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서로에게 속내를 쏟아내는 연극 속 모녀처럼, 넷플릭스발 광풍에 속절없이 쓸려나가는 이들도 연대의 목소리를 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