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숫자 말고 구조를 설계하라[MT시평/김덕호]

김덕호 성균관대 교수
2026.06.05 02:00

청년들이 노동시장의 입구에 길게 줄 서 있다. 일부는 기다림 끝에 포기한다. 지난달 청년 고용률은 24개월 연속 하락했고, 취업자는 작년 대비 19만 명 넘게 줄었다. 20·30대의 '그냥 쉬었음' 인구는 72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정부는 지방선거 이후 정년연장 논의를 서두를 분위기다.

숙련 인력이 더 오래 일하게 하자, 노후의 소득 공백을 줄이자, 고령자의 존엄을 지키자는 말은 모두 옳다. 그러나 이 선의가 기업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전혀 다른 질문으로 바뀐다.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가. 신규 채용은 가능한가.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연금 수급 시점이 늦어 퇴직 후 소득 공백은 길어지고 있다. 정년연장 논의가 피하기 어려운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방식이다. 낡은 노동시장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숫자만 60에서 65로 옮기면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 입구는 더 좁아진다.

정치권이 쉽게 던지는 정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채용과 인건비, 승진 구조와 조직의 연령 체계까지 흔드는 문제다. 정년이 늘어나면 고임금 인력이 더 오래 머물고, 아래 세대의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무엇보다 기업은 채용의 문부터 닫을 가능성이 크다.

정년연장이 곧 청년 일자리 감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이 성장하고 직무가 새로 만들어지면 세대는 경쟁자가 아니라 보완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기업처럼 입직은 어렵고 이동은 적으며 임금이 연공 중심인 구조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기에 AI와 자동화는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며 밟던 첫 사다리마저 빠르게 걷어내고 있다. 경직된 노동시장은 결국 세대 간 제로섬 게임이 된다.

'대기업 김부장'도 단순한 가해자가 아니다. 그는 청년의 자리를 막는 기득권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불안한 노후 앞에서 회사 밖으로 밀려나기 두려운 생존자이기도 하다. 청년은 입구에서 막히고, 김부장은 출구에서 불안하다. 서로를 원망하지만 둘 다 구조 안에 갇혀 있다.

진짜 문제는 법정 정년 자체가 일부에게만 실효적이라는 데 있다. 영세·중소기업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에게 정년은 여전히 남의 이야기다. 이들에게 퇴직은 법이 정하는 시점이 아니라 건강이 무너지거나 일감이 끊기는 순간 찾아온다. 이들에게 정년연장은 공정이 아니라 불평등과 박탈감의 연장일 수 있다.

그래서 정년연장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외국도 단순히 정년 숫자만 올린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은 근로시간 단축과 부분 연금을 결합해 단계적 은퇴 모델을 발전시켰고, 일본은 재고용과 직무 전환, 임금 조정을 함께 설계했다. 미국 역시 임의고용 원칙 아래 노동 이동성이 높은 고용 구조를 유지해 왔다.

고령자 계속 고용은 단순히 자리에 오래 머무는 체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숙련을 나누고 역할을 바꾸는 전환이어야 한다. 청년은 기회를 원하고, 고령자는 노후 소득을 원하며, 기업은 지속가능성을 원한다. 모두 정당한 요구지만 현재의 구조에서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해답은 고용의 유연안정성에 있다. 정년이 세대의 전쟁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숫자를 바꾸는 정치보다 구조를 설계하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김덕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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